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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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 Mashimaro | 2021. 10. 29. 02:26

 

 

 

 

 

평소에 신간을 바로 찾아서 읽는 일은 나에게 별로 없는 일인데, 이번엔 예외적으로 출간과 거의 동시에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만큼 김초엽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 또 최근에 《코스모스》, 《프로젝트 헤일메리》 등 우주, SF, 과학 등등에 대한 관심이 살짝 더 있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 읽고있는 《특이점이 온다》와 연결지어지는 지점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어쨌든 감사하게도 거의 출간과 동시에 책을 읽게 되었고, 결론은 '역시나 김초엽!' 으로 귀결되었다. 

 

사실 이번작품집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조금 더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임팩트라기보다는 전작이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장르가 SF임에도 불구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구 끝의 온실》도 그러했고... 물론 이번 작품집에서 그러한 온기는 여전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이 작품집의 제목에 충실한 작품들이 실려있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작품집의 실린 소설들은 각 세계관 설정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른부분의 매력이 덜해보였을 뿐이다. 그정도로 감탄하며 읽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부럽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요 몇 년간 한국 젊은작가들이 쓴 SF의 매력을 알게된 이후로, 이러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미친듯한 상상력도 놀라웠고, 또 그렇게 구축한 세계관 속에 현대사회의 문제들, 그리고 우리의 많은 고민들을 기막히게 녹여내는 솜씨에 놀랐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앤디 위어의 작품들처럼 엄청난 해외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는 장르이지만, 한국형 SF에 빠져들게 되는 매력은 아무래도 내가 아는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자꾸 찾아읽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너무너무 좋아서이고... 그래서 더 많은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캐빈 방정식》은 이미 읽었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읽었던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왜 읽으면서 눈물마저 핑 돌았던 것일까... 아무래도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떠한 메시지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단편이 이렇게 하나의 작품집으로 출간되었을 때 또 다른 의미를 갖게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건 김혼비작가의 책을 읽을때도 했던 말인 것 같은데..) 김초엽 작가도 부디 오래오래 다작해주었으면 좋겠다. 

 

 

 

공포와 불안이 퍼지자 질병보다 빠르게 불멸인들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수백 년간 죽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왔다. 불멸은 그들에게 숨 쉬듯 당연한 삶의 조건이었고, 불멸인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전 유전자 수준에서 이미 제거되었다.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지나친 공포도 불필요한 특성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강인했고, 과감했으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겼다. 그러나 도시에 갑작스러운 죽음이 도입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들은 후천적으로 공포를 학습했다. 수백 년간 유예되었던 죽음에 대한 뒤늦은 공포였으므로, 그 무게는 엄청났다.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적다니, 너무 이상해."

 

"제나, 난 너처럼 인지 공간을 돌아다닐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 아무런 지식도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니야."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목록]

 - 최후의 라이오니

 - 마리의 춤

 - 로라

 - 숨그림자

 - 오래된 협약

 - 인지 공간

 - 캐빈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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