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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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혼비 『아무튼, 술』

| Mashimaro | 2019. 11. 10. 17:27







아무튼, 문구》에 이은, 아무튼 시리즈의 두번째 완독책이다. 하지만 사실 아무튼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먼저 구입(리디셀렉트이니 책장에 추가)한 것은 이 책이다. 사실 제목도 확인하기 이전에 김혼비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만 보고는 바로 위시리스트에 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김혼비작가에게 푹 빠지게 된 것은 이전 작품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고나서 이고, 너무나도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또 그 글빨이 너무나도 부럽고 좋았기 때문에 작품 하나로 그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좋았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마시는 편이다. 따라서 내가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확실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남편이 P작가님과도 술이 인연이 되었을 정도이니, 어느정도 자연스레 납득도 간다. 물론 당연하게도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고, 또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술이 매개체일 뿐이지, 술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문구》를 읽으면서는 문구를 좋아하는 동질감에 푹 빠져서 너무나도 안정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물론 이번 책을 통해서 ‘술’자체에 대한 매력도 어느정도 어필이 된다. 하지만 술이라는 것 자체가 실수도 하게 하고 또 워낙에 의도적으로라도 이성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문구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덕분에 저자와 함께 이성적이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해주어서 어쩌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김혼비작가의 글은 그냥 재미있다.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심지어 재미있는데 글이 가볍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냥 뭐든 좋으니 김혼비작가가 작품을 많이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런 힘이 없어 누군가의 귀에 가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때로는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쉬운 말밖에 없을지라도, 이런 쉬운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가닿기를, 언젠가 쉬워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소망이 단단하게 박제된 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바닥에라도 굴러다니고 있으면 나중에 필요한 순간 주워 담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언젠가 힘을 내야만 하니까. 살아가려면.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그런 점에서 홍콩을 닫고 술친구를 열어젖힌 나의 선택은 내 생애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당장 눈앞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기꺼이 내일의 숙취를 선택하는 것과도 닮았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배짱과 자의식, 지금을 놓칠 수 없다는 초조함과 잘해내고 싶다는 부담 사이에서 마구 흔들리다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어설프고 수줍은 욕이 내 입에서 나왔다. “씨발.” 욕을 뱉자마자 화끈거리고 괴로워서 앞에 놓인 칡주를 원샷했다…. 보통 프로씨발러들의 욕을 보면 ‘씨파’와 ‘씨바’ 사이 어딘가에서 발음의 경계가 살짝 흩어지듯 자연스럽게 굴러 나오는데 나의 그것은 아나운서가 저녁 뉴스 중에 씨발을 말했어도 이렇게는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또박또박하고 굴곡 하나 없었다.

P는 꽤 근성이 있는 욕 선생이었다. 청하 두 병을 더 비울 때까지 우리들의 진지한 욕 레슨은 이어졌고, 슬슬 둘 다 혀가 풀리기 시작할 무렵, P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그 정도면 됐어. 사실 욕이란 게 연습한다고 늘겠냐, 술 마신다고 늘겠냐. 그냥 사는 게 씨발스러우면 돼. 그러면 저절로 잘돼.” 이상하게도 이 말과 이 장면은 오랜 세월 내 기억 속에 깊이 박히게 된다. 말을 맺고 느릿느릿 청하를 따르는 P의 모습이 소스라치게 쓸쓸해 보여서 굳이 병을 빼앗아 내가 따랐다. 그랬다. P도, 생각해보면 Y도, L도 저마다의 문제들로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게 그들의 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래서 마시는 술들은 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암담했다. 모든 게 술처럼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취향의 확장과 함께 넓어지는 세계. 멋진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그게 와인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소중한 기억들을 안겨줄 테고, 그건 분명 멋진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멋짐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는 사람에 나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대개의 취향은 돈을 먹고 자란다. 그 때문에 어떤 취향의 세계가 막 넓어지려는 순간 그 초입에 잠시 멈춰 서서 넓어질 평수를 계산하고 예산을 미리 짜보지 않고서는 성큼 걸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확장공사 다 해놨는데 잔금 치를 돈이 없으면 그때 가서는 어떡해? 그 돈으로 다른 좋은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나처럼 현실적인 여건이 여의치 않고 통이 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어떤 세계를 피워보지도 못하고 축소해버리고 마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만큼은 꼭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그런 축소와 확장의 갈림길에 몇 번이고 놓이다 보니, 축소가 꼭 확장의 반대말만은 아닌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때로는 한 세계의 축소가 다른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확장이 돌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축소해야 할 세계와 대비를 이뤄 확장해야 할 세계가 더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게는 ‘모자란 한 잔’보다 ‘모자란 하루’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든지, 그래서 모자란 한 잔을 얻기 위해 쓸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모자란 하루들을 늘려가는 데 잘 쓰게 되었다든지, 같은 여러 가능성. 아니, 뭐 그렇게 안 이어지면 또 어떤가. 그러니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가끔씩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은 술 마시고도 하지 않는 게 맞다” “술 마시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을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싫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 중에는 속에 담아두는 편이 좋은 말도 있을 테고, 밖으로 꺼내는 편이 좋은 말도 있을 텐데(당장 드라마들만 봐도, 속에 담아둔 채 서로 추측만 해대다가 점점 오해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전개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보면서 늘 외친다. 서로 말 좀 해! 추측을 맹신하지 말고 힘들어도 서로의 사정과 마음을 확인부터 하라고!) 그런 경우에는 술의 힘이라도 빌려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할 말을 해주는 사람이 훨씬 좋기에, 상대에게 술이 작은 독려가 된다면 얼마든지 술을 무한대로 사주고도 싶다. 물론 술 없이도 그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대로 좋겠지만, 세상에는 맨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말들이라는 게 분명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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