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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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Mashimaro | 2019. 11. 18. 09:53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재미있었고, 또 너무 좋았다. 이러한 계열의 에세이들이 워낙에 잘 읽히기도 하지만, 작가들 자체가 워낙에 새로운 개념의 생활을 하고있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또한 이러한 생활패턴이 앞으로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이 책이 많이 와닿았던 것은 내가 아직 혼자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독신여성들이 많아지고, 어느새 나 역시도 그런 대열에 서있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독신여성 혹은 비혼에 관한 글들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조금 설정이 달랐다. 여자 둘이 살고있다… 제목만 언뜻 보면 마치 레즈비언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나 역시도 혹시 그런 책인가?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흔하디 흔한 여자사람 두 사람이 동거를 하는 그러한 이야기였다. 

황선우 작가는 직장인, 김하나 작가는 프리랜서이며, 두사람은 생각 등 비슷한 점도 많으나 함께 생활하기에는 다른 점들도 너무나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매번 부딪치고 싸우고 할 수 있는 관계인데, 이게 또 절묘하게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며 생활해가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결혼한 부부의 역할을 두 사람이 대신해주는 부분도 있는가 하면, 부부생활을 하면서 겪는 단점들은 친구 혹은 동거인이라는 역할로 쏙쏙 피해가는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재미있는 삶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두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나와 함께사는 다른 이에 대한 배움과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둘의 생활환경에 대한 부러움 혹은 재미도 느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둘 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 답게, 에세이의 문체 혹은 내용들이 참 읽기 쉬웠고 그리고 공감하게 되는 내용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어느정도 나이가 든 독신여성인 내 입장에서 읽었을때 정말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했으며, 대리만족, 그리고 나 대신에 멋지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마음맞는 친구와 동거까지는 못하더라도 여행정도는 한번 계획해보아야 겠다.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이 맛있고 혼자 하는 여행의 간편한 기동력을 사랑한다. 그런 한편으로 또 믿게 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외출하기 전에 입고 나갈 옷을 새롭게 조합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고, 반면 이틀 연속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침울해지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착장으로 지내는 게 한 사람에게는 고민을 덜어주는 간편한 일, 다른 쪽에게는 변화의 재미를 만끽할 수 없어 힘든 고충인 것이다.

나도 결혼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느라 아슬아슬 생활의 균형을 잡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시간을 쪼개 쓰며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 남편들의 회사 생활이나 개인으로서의 일상이 한결 여유 있어 보일 때 더 그렇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점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는 여자는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잔잔한 물에다 괜히 돌 던지는 모양새로 주변에서들 툭툭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무슨 참견면허증이라도 딴 것처럼 온갖 사람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 들어왔다.

아직이라고 답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이유를 묻는 탐정파, 무슨 내 결격 사유를 덮어주는 양 “앞으로는 좋은 일 있겠지…”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덕담파, 혹은 멀쩡해 보이는데 너도 별수 없다는 듯이 깎아내리는 공격파. 언뜻 걱정이나 관심 같아서 속아넘어가기 쉽지만 이런 말들은 공감도 배려도 없는 행동이다. 그 문제가 진짜 문제라면 당사자가 가장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툭 건드리듯 지적한다고 당장 해결될 가능성도 없고, 무엇보다 남의 일인데 어째서 맡겨놓은 듯이 계획이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어리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종종 이런 주제 넘은 참견의 대상이 된다.

결혼 안 한 나를 두고 무슨 결격 사유가 있다는 양 비아냥거리거나 내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둘 말고도 많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 쳐도 그런 얘기를 사람 앞에다 두고 할 수 있는 무례함이 놀랍고,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도 결혼을 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 ‘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나만이 아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그러니까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내 자존감이,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는 세상에 많은 결혼한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이 성립하는 건 당연하게도 그게 내 일이 아니라서다. 거리를 두어야 눈에 들어오는 형체가 있고, 너무 뜨거울 때는 삼키지 못하는 덩어리들이 있으니까. 남의 연애에는 서두르지 말라든가 미련을 버리라든가 잘도 충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막상 모두 사랑의 달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둔감력이란 모든 상황 앞에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고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이다. 내 생각엔 같이 사는 사람은 둔감력이 강한 사람이 좋은 것 같다.

나에 대해 깨닫고 나자 오히려 동거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 우리가 세상을 똑같이 지각하는 게 아님을, 애초에 당신과 나의 세상이 다름을 알게 되었으므로.

만약 딸내미 친구가 아니라 며느리가 안경을 보냈다면 그렇게까지 망설이거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은연중 도리의 영역에 포함되고 딸내미 친구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호의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호의. 이게 ‘원래의 마음’ 아닐까? 관습과 가족 관계와 책임과 의무로 짓눌려버리기 이전의, 좋아하는 친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갖는 친근한 마음. 내 자식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 나라 모든 며느리, 사위, 장인・장모, 시부모 들에게도 원래의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왜곡 없이 이 원래의 마음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열무김치와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 먹는 우리가 역시 위너인 것 같다.

동거인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에 나는 이렇게 추천사를 썼다. “설거지나 고양이 구경을 주된 일과로 파자마 차림인 채 하루를 보내나 싶다가도 김하나의 생각은 아주 멀리까지 다녀온다.”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에 남들은 모를 나태함이나 느슨함을 발견하게 된다면, 거꾸로 그렇게 근거리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매일의 묵묵한 성실함도 목격하게 된다.

생활동반자법이 기존의 가족 관계를 부정하거나 흔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진선미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기존 가족 관계를 위협하는 건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서로 돌보며 살 수 없도록 하는 팍팍한 현실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사람들이 서로 돌보고 가족을 이루어 살도록 장려하는 가족 장려 법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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