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물론 《총, 균, 쇠》를 먼저 읽고 싶었지만, 이 책은 아무리 기다려도 전자책이 나오지 않는 터라, 어찌어찌 하다보니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책, 《대변동》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문명시리즈라고 한다면, 이 책은 주로 ‘위기’에 대한 주제로 진행시키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덧붙이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을 읽다보면 역시나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데, 예를 들어 설명하는 여섯나라(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역사와 정치상황, 그리고 그 분석을 지루하지 않고 생각보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준다. 아무래도 저자가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 이력이 여기에서 발휘되는 듯 하다. 저자는 예시로 든 나라들을 선정할때 물론 그 각 항목에 걸맞는 기준들이 있었지만, 여기에 더하여 자신이 직접 방문하거나 경험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설명한다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인류학적 참여관찰을 토대로 그 위에 역사, 정치적 상황들을 더해서 설명한 듯 하다. 또한 조류, 생리학자이기도 해서인지 자원과 환경문제에 대한 언급을 할때는 꽤 프로페셔널한 분석을 통해 언급하였다.
각 나라에 대한 사례분석 이후에는 국제적인 단위로 스케일을 키워서 현재진행형인 위기들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이는 과거와 다르게 현재 혹은 미래는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4가지를 들고 있는데, 핵무기, 기후변화, 자원고갈, 생활수준 불평등에 대해서 지적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자원문제에 대한 관점이었다. 대체에너지와 환경문제, 혹은 원자력에 대한 위험부담을 함께 언급하는데, 어려운 지적이긴 하지만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부분으로 느껴졌다.
또 재미있는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겪고있는 인구문제에 대한 다른 관점인데, 인구문제를 단순히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문제와 연결시켜서 분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일본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요즘같이 한일관계가 뒤숭숭한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저자가 조금은 시원한 발언을 해주지 않았나 싶다.
위기와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닥친다. 한 사람의 개인부터 팀과 기업, 국가와 전 세계까지 규모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나한테 문제가 있어!”라고 인정한 후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물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버지가 파리의 공원 벤치에 앉아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생리학을 연구하는 데 반년을 더 투자하지 못할 이유가 있니?”라며 건넨 자상한 조언은 나에게 구명조끼처럼 느껴졌다. 나 혼자서는 생각해내지 못한 해결책이었다. 이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인내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두 경우의 차이가 있다면 서구인을 겨냥한 시시들의 공격으로 서구의 강력한 전함이 가고시마와 시모노세키해협의 포격을 유발하며 시시에게 자신들의 전략이 비현실적이었다는 깨달음을 주었지만, 1930년대에는 해외 경험이 없는 젊은 장교들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줄 만한 외국의 보복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메이지 시대에 성년이 된 지도자 세대의 역사적 경험은 1930년대에 일본의 지도자가 된 세대와 전혀 달랐다. 메이지 시대 지도자들은 강력하고 잠재적인 적의 공격 가능성에 노심초사하던 허약한 일본에서 인격 형성기를 보냈지만, 1930년대 지도자들에게 전쟁은 러일전쟁의 황홀한 승리를 뜻했다.
칠레는 옛 군사정부의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도덕적 딜레마로 아직도 씨름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성과로 잔혹한 범죄를 상쇄할 수 있느냐는 딜레마로,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물론 경제적 성과와 잔혹한 범죄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 군사정부가 끔찍한 짓만이 아니라 유익한 유산도 남겼다는 걸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느냐 하고 단순히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아내와 내가 다하우에서 본 것은 독일에서 모든 어린이가 1970년대 이후로 줄곧 본 것의 일부였다. 독일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치의 잔혹 행위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많은 아이가 다하우처럼 과거에는 강제수용소였지만 전시관으로 꾸민 곳을 견학한다. 과거의 범죄를 이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직시하는 현상은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독일만큼 과거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없었다.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지금도 1965년의 대량 학살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5장 참조).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일본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도 과거의 전쟁 범죄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8장 참조).
따라서 1945년 전후에 태어난 독일인은 자신의 부모와 부모 세대를 나치 부역자로 불신했다. 이렇게 해석하면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침략국,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도 학생 시위가 폭력적 성향을 띤 이유가 설명된다. 반면 미국에서 1945년생의 부모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아니라 전쟁 영웅으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1960년대에 미국의 10대가 부모 세대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부모 세대를 전쟁 범죄자로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브란트의 이력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70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였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백분율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잃은 국가였다. 또 나치의 대형 강제수용소들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폴란드가 독일인을 회개하지 않는 나치라 혐오하는 데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브란트는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비록 실패했지만 1943년 4월과 5월 나치의 점령에 항의한 유대인 폭동이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를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고는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치에게 수백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독일인을 끝없이 불신하던 폴란드인조차 브란트의 행동을 계획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 인정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요즘의 외교에 비추어보면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행동은 가해국의 지도자가 큰 고통을 당한 피해국의 국민에게 보낸 진심 어린 사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독일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피해자 역할을 거부하고 수치심을 수용한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인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인이 피해자 역할을 자임한 경우와는 완전히 대조되기 때문이다(8장 참조). 과거를 이렇게 처절히 반성한 결과가 오늘날 독일에 유리하게 작용해, 현재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이나 현재의 일본보다 과거의 적들과 더 확실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부담을 안고도 일본 정부가 오래전에 붕괴되거나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대부분의 국채를 외국 채권자가 아니라 일본 국민과 일본 기업 및 공기업인 연기금과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채권자가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 경제 주체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국채 대부분은 외국 채권자가 보유한 까닭에 채권자들은 그리스를 거칠게 대하며 재정 정책을 전환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 자체는 다른 국가에 많은 돈을 빌려준 순채권국이다.
분명히 해두지만 내가 이민에 대한 일본의 반감이 ‘잘못된 것’이므로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어떤 나라에서나 이민은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장점과 단점을 평가해 이민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각 국가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처럼 오랫동안 고립되어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민족적으로 동질적인 국가가 민족의 동질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반면, 미국처럼 거의 모든 국민이 이민자의 후손이어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민족의 동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놀라워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일본의 딜레마는 다른 국가들이 이민을 통해 그럭저럭 완화하고 있는 문제로 골치를 앓으면서도 이민 외에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인이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몇 가지 이유로 그들은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과거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유감이나 회한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경우마다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일본인의 손으로 쓴 기록에서 발견된 후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장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의 행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이다. 일본이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
일본인 학생들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학생 모임에 참여해 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학생을 만나 일본이 전쟁 기간에 저지른 잔혹 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그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지금도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면 충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들이 수없이 사과했다고 말하며 “일본이 이미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학생과 일본인이 적지 않다. 간단히 대답하면 “그렇지 않다”! 사과가 억지로 꾸민 듯하고 설득력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책임을 최소화하거나 부인하는 발언이 뒤섞인다.
퍼트넘을 비롯한 많은 학자는 미국에서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하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얼굴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주고받는 사람에게 무례하지 않고 조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대가 모니터 위의 글로 바뀌면 억제력이 느슨해진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보다 모니터 위의 글에는 무례하고 경멸하게 굴기가 훨씬 더 쉽다. 이렇게 멀리 떨어졌다는 이유로 언어폭력을 행하고, 그런 행위가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눈앞의 사람에게도 더 쉽게 언어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각 대체에너지는 고유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내가 거주하는 남캘리포니아는 대규모 태양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햇살이 내리쬐는 사막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었다. 이런 행위는 이미 멸종 위기에 내몰린 사막거북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풍차는 새와 박쥐를 죽이고, 땅 주인들은 풍차가 아름다운 풍광을 망친다고 불평한다. 강을 가로지르는 수력용 댐은 회유 어류에게는 크나큰 장애물이다.
결국 우리는 좋은 해결책과 나쁜 해결책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므로 “나쁜 대체에너지 중 어느 것이 가장 덜 나쁜가?”라고 물어야 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범세계적 문제에 맞닥뜨렸지만 과거에 그런 문제를 겪은 경험이 없고(요인 8), 따라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례도 없다(요인 9). 우리가 세계적 차원으로 결집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정치적 협상의 역사는 국가가 탄생하기 전, 더 정확히 말하면 현생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한 수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여기에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세계적 문제는 모두 양자 간 협상과 다자간 협상의 주제였다.
“국가가 중요한 선택적 변화를 시도하도록 자극하려면 위기가 먼저 있어야 하는가 혹은 문제를 예상하고 행동한 적이 있는가?”
내가 비관주의자의 푸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방향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 위기는 과거에도 국가를 곤경에 빠뜨렸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대 국가와 현 세계는 앞으로 위기에 대응하려고 어둠 속에서 헤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거에 효과를 발휘한 변화와 그렇지 않았던 변화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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