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거의 100퍼센트 공감을 하며 읽은 책이 있을까? 에세이의 형식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취미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나같은 독자는 같은 ‘덕후’를 만난 반가움을 가지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아니 같은 덕후라기 보다는 나보다 훨씬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 마치 그동안 떠들고 싶었으나,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만 묵혀두고 있던 생각, 덕질, 노하우 등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다고나 할까? 덕후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는 단비같은 책을 만난 느낌이다.
사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같은 '아무튼 시리즈'에 들어있는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리디셀렉트에서 발견하고 부터이다. 사실 술을 좋아하지는 않은지라 술이라는 소재에 끌렸다기 보다는, 일전에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작가의 이름만 보고 얼른 다운받았다. 그러고 보니 '아무튼 시리즈’라는 자매품(?) 책들이 나와있는 것들을 발견하였고, 이 《아무튼, 문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리디셀렉트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일단 몽창 추가해 두었다. 그러나 가장 나의 관심사와 맞는 소재는 문구였고,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읽은 친구같은 책을 한권 건질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문구사랑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으며, 당당하게 ‘문구인’이라고 주장한다. 여러가지 정보들과 본인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내가 가진 생각과 너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아는 이야기가 나올 경우 식상하기 나름이지만, 이 책은 아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게 맞장구를 쳐가며 읽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가끔씩 문구관련 글로 블로그에 업로드 하기도 하고, 유튜브에도 거의 문구관련 컨텐츠를 올리고 있다.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커뮤니티 두곳을 뽑으라면 독서과 문구관련 카페이다. 그러다보니, 왠지 저자가 나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였지만, 정작 먼저 읽은 것은 이 책이 되었다. 보아하니 대부분이 취미관련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소재를 가지고 쓴 시리즈인 듯 하다. 그렇기에 더욱 마니악한 내용들이 많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한권씩 정주행 해야할 것 같다.
가끔 SNS에 일기를 공개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렇게 공개한 일기를 모아 책으로 낸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는 일기를 가장 많이 쓴다. 일기를 쓰면서 매일 다짐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고. 오늘도 내일도 독자는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고 일기를 쓴다. 내가 나와 나누는 대화를 기록하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마주한다. 가장 솔직한 나의 감정을 일기를 쓰면서 알게 된다.
일기를 쓰고 나서 다시는 열어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사실 나는 내 지난 일기들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재미있다. 언제 어딘가에서 구구절절 적어 내려갔던 노트들을 펼쳐 들면 그때 그 순간의 공기, 정취, 분위기와 감정들이 생생히 살아난다(아날로그 기록 방식을 아직까지 열심히 고수하는 이유다).
취미가 문구 사들이기라서 좋은 것이 있다면 아무리 많이 사도 가산 탕진까지는 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고급 필기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다행히 아직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무작정 쌓아놓고 보는 습성이 있다. 이제 막 쓰기 시작했는데도 ‘이걸 다 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드는 물건들이 가끔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불안감을 남들보다 조금 더 심하게 느끼는 편인데, 내가 나름대로 강구한 해결책은 바로 쟁여두기다.
그러다가 문구 소비에는 ‘실용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사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문구가 정말 딱 그 정도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용성만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수많은 문구점들에 꽉꽉 들어찬 수천 종류가 넘는 검정 볼펜들의 존재 이유를 좀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생필품들은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뻔뻔해지기로 한 김에 내가 가진 수많은 쓸데없는 문구 중에서도 실용성 면에서 가장 떨어지는 문구 세 가지를 꼽아보겠다. 첫째, 그냥 써도 되는 걸 굳이 무겁게 들고 다니는 가죽 노트커버. 둘째, 두 자루밖에 안 들어가는 펜 스탠드. 셋째, 카웨코(Kaweco)사의 황동 샤프(무거워서 그야말로 관망용이다). 그런데 이 세 개는 문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들이기도 하다. 명확한 쓸모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 매일 나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문구를 사고 싶은 이유는 실용적이라는 이유 말고도 너무나 많으니, 우리는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문구는 이상하게 뭔가 잘 풀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왠지 글이 잘 써지는 것 같은 노트나 유난히 포인트 볼이 잘 굴러가는 볼펜 등을 만나면 은근히 그 도구들에 집착하게 된다. 일종의 부적처럼 말이다.
문방구의 힘이 참으로 신묘한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거다. 어떤 문구는 당장 행동하게 하고, 또 어떤 문구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한다. 만년필을 새로 산 날엔 끊임없이 글씨 연습을 하거나 글을 쓰고, 데일리 체크리스트를 사면 아침마다 꼬박꼬박 할 일을 정리해보게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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