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디선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책을 알게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계속해서 묵혀두었다가, 갑자기 읽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쓴 에세이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느끼는 것은 책 제목이 정말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딴지일보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또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직장과 완전히 성격이 다른 일베사이트를 아들이 들락날락한다는 에피소드에서는 웃음이 나기도 했고, 잠시 감정이입이 되어서 심각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러한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그렇게 가법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초반부터 아들이 가출을 하고 아버지와 반목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갓난아이에서부터 청소년,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와 함께 아버지도 부모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아버지를 낳고’라는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이 에세이가 좋았던 것은, 우리가 ‘비교적’ 흔히 생각하고 접하게되는 어머니의 입장이 아닌, 아버지의 입장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이다. 아버지만이 느낄수 있는 외로움, 혹은 고민, 쉽게 남들에게 터놓지 못했던 생각들.. 우리아버지도 그랬을까? 함께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주위의 아버지들도 그러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덤덤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 책이었는데,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나 아들이 내뱉은 ‘아버지’라는 말. 내 남동생도 아빠와 비슷한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매우 크게 와닿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은 어떠한 모습으로 더 ‘성장’해 있을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아이 때문에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것은 기대에서 벗어나는 아이의 미래를 마음대로 상상하고 확신하며 재단하는 부모의 ‘자발적 전지전능함’ 때문 아닐까? 그 예언이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이 땅이 온통 깡패와 도둑의 소굴이 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부정이다. 나는 이런 태도를 갖는 것만이 내 가족을 화목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부정否定만이 부정父情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나는 아들을 불러, 친구에게 욕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발신자를 숨겼던 비겁함에 대해 지적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아내는 새우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남의 자식에게 욕을 먹고 온 딸의 상처나 남의 자식에게 욕을 한 아들의 위험함 따위보다는, 이제는 품 안에서 아이를 놓아야 하는 한 여인의 안쓰러운 모성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많이 컸고, 아내의 작은 몸으로는 이제 이 아이들을 품지 못할 것이었다. 아프겠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제 살 같고 제 뼈 같은 새끼지만, 이제는 놓아 줘야 한다.
엄마와 딸이 동성끼리의 교류감으로 그들만의 친밀감을 부침없이 나눠 가질때, 아빠들은 커 가는 딸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분리 불안의 아픔을 홍역처럼 앓게 된다는 것을, 엄마들은 알까? 딸들은 알까?
자식 이길 부모 없다지만, 부모 이기고 후회 안 하는 자식도 없다. 특히 부녀지간 화해의 열쇠는 딸이 쥐고 있다. 세 살 딸이든 서른 살 딸이든, 딸의 애교 앞에서 녹지 않는 아빠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딸이 먼저 아빠의 손을 잡아 주면, 차갑게 식은 아빠의 손은 금새 온기를 되찾는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 인생이 한동안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그냥 그것만으로 아이들에게 고마워하기로 해요. 그리고 당신, 참 많이 애쓰고 있어요.
부모의 유골을 보며 이물스러움을 느낀 죄인은 신음처럼 내뱉는다.
왜 살아야 하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는 ‘살아 있을 때’에만 발생하는 자문이다.
딸은 아빠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희생하는 모습에서가 아니라, 아빠가 아빠 스스로를 위해 행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더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다. 집에는 월급도 많이 못 갖다 주고 아이들에게는 용돈도 많이 못 주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인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찜찜한 마음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족이란, 한쪽이 힘이 빠지면 다른 쪽이 더 힘을 내주면서 가력(家力)의 평균점을 맞춰 주는 공동체라는 사실.
그러므로 공연히 세상의 회오리에 휩쓸리지 말고, 차라리 나는 부족한 부모라는 것을 뻔뻔하게 인정하자. 부모로서의 성찰은 게을리하지 않되 양육과 교육에 관한 자기 심지를 단단히 하자. 나는 이것이 수십 권의 좋은 부모되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를 가장 사랑하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많이 고민했고, 누구보다 더 많이 자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훈수꾼은 영원한 훈수꾼이다.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상처도 받지 말고, 당신의 뚝심으로 나아가라. 지치지 말고, 오래 달리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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