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 Mashimaro | 2018. 10. 11. 03:39






버지니아 울프의 강연집인 《자기만의 방》을 인상깊게 읽었던지라, 이 책도 어쩌면 호기롭게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함께읽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 자체를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궁금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게 됐다. 사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내가 아주 힘들어하는 형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겁없이 읽기 시작했던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단단히 울프언니한테 홀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걱정했던 만큼 그렇게 읽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이 책을 어느정도까지 이해한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읽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잘 이해하기는 꽤 힘든 것 같다.

 

일단 이 작품이 판타지에 가깝다는 사실을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건 나의 좋은 버릇일지도, 혹은 나쁜 버릇일지도 모르는데.. 가끔씩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덥석 집어서 읽는 경우들이 꽤 있다. 이 책도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인데, 장르조차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이야기의 전개를 보고 '이게 뭐지?' 하며 놀랐던 케이스이다. 갑자기 남자에서 여자가 되질 않나, 16세기에 태어난 주인공이 20세기 초에 겨우 삼십대가 되어있질 않나. 뭔가 고전식 판타지인듯한 느낌이다. 안그래도 요즘, 어울리지 않게 SF와 판타지를 너무 읽고 있는데, 이 작품으로 숨 좀 돌리나 싶었더니 이 역시 판타지였다니. 진짜 제대로 한방 맞는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황당한(?) 설정을 통해서 울프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는 느낌이다. 남성이 여성으로 바뀜으로 인해 당시 사회에서 겪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몇세기를 걸쳐서 계속 진행되는 덕분에 시대적인 변화들이 눈에 보인다. 이를 통해 올랜도가 적응 혹은 부적응하며 살아가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정말 따지고보면 생각할거리, 그리고 다루는 소재들이 정말 많다.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따라가기가 조금 버거웠다. 조금 이해가 되고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싶으면 다시 상황과 설정이 여기저기로 튄다. 그러면 그걸 또 쫓아가야 하는데, 작가의 호흡과 나의 호흡이 잘 맞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조금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렵다기 보다 쫓아가기 버거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는 걸 보면, 당시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공감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 시절이 이런 장르의 판타지라니. 예나지금이나 판타지 속에 사회문제를 녹여내기는 힘들었을텐데 말이다. 그만큼 울프가 독창적인 작가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작품으로는 그녀의 색깔을 아직 잘 모르겠다. 다른 작품들을 파보는 수 밖에..





올랜도는 책을 쓰고 출판하는 사람의 영광이 모든 혈통이나 신분의 영광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 -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것 말고는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성이 전환된 것, 그것이 미래를 바꿀 수 있었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얼굴도 초상화와 다름없는 그대로였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올랜도는 성별이 변화했다기보다는 서로 혼합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성에서 다른 성으로 옮기려는 성향이 숨어 있다. 그리고 종종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나타내주는 것은 의복일 뿐이다. 의복 아래에 숨겨져 있는 성이 외형과 전연 상반해 있는 경우일지라도 말이다. 



이는 사교 모임에서도 똑같았다. 그 다음 날에는 남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격렬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교계란, 크리스마스에 솜씨 좋은 주부가 열두 가지의 성분을 적당히 섞어 빚은 술과 같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된다. 재료 중 하나라도 제거하면 술은 제 맛을 내지 못한다. 



물론 천재는 등대보다 더 변덕스러우며, 그래서 잇따라 재빠르게 예닐곱 번의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날 밤 포프 씨가 한 것처럼). 그리고 그 다음에 일 년 혹은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빛에 의지해서는 여행을 못한다. 일단 암흑기에 빠져들면 천재는 범인凡人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어진다고 한다. 



결국 요절과 부패에 대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더니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쁜 일이었다. 이처럼 그녀가 증명하듯, 글을 쓴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모양이다.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