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어느 고인류학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도 거창하고, 표지도 뭔가 있어보이고, 심지어 내셔널 지오크래픽(National Geographic)의 마크까지 찍혀있다. 아마도 책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다들 쉽게 집어들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나 역시도 내 전공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책. 혹은 사두고 벽돌책들 처럼 책장에서 오래 묵혀있을만한 그런 분위기의 책이다. 하지만, 난 책의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이건 편견이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너무 어렵고 대단한 책이라고 미뤄두기엔 프롤로그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롤로그에서 소개되는 에피소드는, 2008년, 저자인 리 버거 교수의 아들인 매슈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Australopithecus sediba)의 화석을 발견한 순간의 이야기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대사가 "아빠, 화석을 찾았어요!"였다는.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저자와 함께 가슴이 두근두근 하게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이 세디바의 발견이 아니었다. 책의 저자인 리 버거 교수팀은 또 한 번의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고인류학계의 뜨거운 감자인 '호모 날레디(Homo naledi)'의 발견이다. 그런데 날레디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전에, 이미 세디바의 발견 에피소드부터 나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1부에서는 리 버거교수가 고인류학을 접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이해가 쉽도록 중요한 고인류학적 배경지식을 함께 녹여놓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니 호모 에렉투스니 사피엔스니.. 하는 것들에 대한 조금 더 전문적인 정보와 현황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심하게 자세하게 서술되어있지는 않으니 크게 겁먹지는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리고 2부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고충도 소개되었는데 이는 고인류학계에서 화석 및 정보공개에 대한 그의 입장과 고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고고학계와도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저자의 상황에 굉장히 이입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3부에서 드디어 호모 날레디를 발견하게 된다. 이 부분은 꽤 생동감있게 읽었는데, 인골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과 발굴조사를 준비하고 착수하고, 실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까지 꽤나 세세하게 소개해준다. 텍스트를 읽고 있음에도 내가 조사현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4부로 이어지면서 이 호모 날레디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이 부분은 학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여전히 진행중인 과정에 있기도 하다. 정말 호모 날레디가 디날레디 동굴에서 매장행위를 하였다면, 이는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세디바와 날레디의 발견 이외에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정보공개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리 버거 교수팀은 학계의 관행(?)과는 다르게 화석과 정보를 오픈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는 세디바 당시에도 시도하였고, 논문의 결과물은 《사이언스 Science》 에 투고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서 날레디의 연구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오픈작업을 시행하면서 워크샵을 통해 결과물을 공개하였다. 처음엔 전통적인 방식처럼 《네이쳐 Nature》에 기고할 생각이었으나, 그들이 결국 선택한 잡지는 더 개방적인 신생(?) 저널인 《 1이라이프 eLife》가 되었다. 심지어 화석모형도 함께 공개했다는. 개인적으로 내적으로 계속 박수를 치면서 읽었다. 2
책을 읽으며 굳이 조금 아쉬웠던 점은 두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전문용어의 번역에서 살짝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고고학이나 석기관련. 물론 글을 이해하기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기에 이건 그냥 나만 걸리는 부분인걸로... 그리고 또 한가지는 사진들이 모두 뒤쪽에 모아져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상상이 잘 되기는 하지만, 역시 사진이 본문에 함께 삽입되어 있는 편이 훨씬 보기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동굴 구조과 같은 이미지는 더더욱!) 사실 사진자료가 별로 없나...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건만, 뒤쪽에서 매우 양질(?)의 사진자료가 이렇게 많이 실려있을 줄은 몰랐던거다. 뭐, 어쨌든 이 역시도 뒤쪽을 들춰보며 읽으면 될일이긴 하다. 만약 고인류학이나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현황과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혹은 발굴조사나 고인류학적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강력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 이 책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참조기사
(《인류의 기원》의 저자 이상희 선생님과 윤신영 기자의 대담)
화석의 발견이란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하빌리스가 에렉투스로, 그다음 사피엔스로 이어졌다고 거의 모든 사람이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교과서에서도 인간의 진화 과정을 그렇게 기술했다. 독자들도 이 직계후손 이론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조각들이 화석과 고고학 기록에 더해지면서 전체 그림은 더욱 복잡해져갔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실제로 우리 세대는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우리는 새로운 연구를 할 때 전문화된 기술에 의존했고, 혼자 힘만으로는 어떤 과학자도 가장 흥미로운 질문에 답하는 데에 필요한 방법을 전부 배울 수 없었다. 정보를 공유하고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리면서 우리는 함께 연구를 진행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 덕분에 논문들이 더 빨리 공유되면서 과학의 속성도 바뀌고 있었다. 동시에 대학과 행정부서는 더욱더 많은 연구성과를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논문을 내거나, 나가거나 publish or perish’의 낭떠러지에 서 있었고, 여전히 개인의 성과로 평가를 받았다. 생산성은 공동연구가 더 높았는데도. 공동연구는 특히 젊은 고인류학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장기적으로 과학적 논쟁은 철저한 과학적 연구에 의해 최종 결론이 날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대중매체나 소문의 출처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과학자들은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괴짜나 미치광이로 취급하는 일이 많다. 왜 사람들이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지, 자신의 가정이나 증거를 조심스럽게 되돌아보는 일은 과학에서 가장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과학기자들은 인간의 진화를 가끔 경마처럼 다루곤 한다. 화석 발견을 인류의 진짜 조상 찾기 경주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타웅 아이가 발견된 당시, 그리고 그보다 더 앞선 시대부터 있었던 경향으로, 기자들의 잘못이기도 하고 과학자들의 잘못이기도 하다.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런 식의 전략이 처음이라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우리 팀이 그때까지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말라파 화석도 가지고 갔다. 다른 화석 발굴이었다면 오직 내부 관계자만 볼 수 있었을 화석이었다.
스티븐이 좁은 홈통 속으로 몸을 움직여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에 모든 사람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매슈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전화 옆에 서자, 아랫입술이 깨물리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화석이 진정 사람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의 목숨까지도? 그러나 의심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하지만 화석을 보게 되자, 화석의 나이를 모른다는 것이, 알았더라면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아이디어를 탐구해볼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긴 건 본 적이 없어요.” 이 말은 이제 가장 흔한 후렴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의 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운이 없는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종을 계속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설사 날레디가 한 장소에 죽은 자의 몸을 모았다 해도, 그들의 동기가 현대 인간의 문화와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문화는 서로 놀랍도록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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