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 혹은 진화와 관련된 일반서적은 진작에 몇권 사둔게 있는데, 이제서야 한권을 꺼내들었다. 사둔 책들 중 왠지 이 책이 가장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현재 여러가지 발표준비로 머리속이 복잡한 나에게 가장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보다는 책의 저자인 이상희 선생님을 먼저 알았다. 개인적으로 만난적이 있는 선생님은 아니지만, 관련분야의 선생님이기도 하고, SNS나 지인들을 통해서 건너건너 소식들을 듣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책에 대해서 들었고, 일찌감치 구입해두고는 전혀 펼쳐보지 않은채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별점은 별 다섯개. 만점이다. 내가 매일 보고 접하고 해야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 이해가 쉬운 것도 있었지만, 가장 감탄한 부분은 어떻게 이렇게 전문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일까..였다. 나 역시도 최근에 전공자가 아닌 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기회들도 생기고, 또 공공고고학이라는 분야 자체에도 늘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끄덕이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필력이 부럽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떠오르는 책이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였다. 뒷부분은 제외하더라도, 선사시대를 다루는데 있어서, 정말 극과 극의 분위기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워낙 개인적인 취향도 있었겠지만,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는 으응? 하고 반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다고 한다면 《인류의 기원》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재밌게 설명이 가능하구나..를 연신 느끼며 읽었던 것 같다. 누군가 관련내용으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단연 이 책을 추천할 것 같다.
물론 뒤에 붙어있는 레퍼런스들 또한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이미 알고있는 내용들도 많이 있지만, 고인류학 전공자가 직접 달아주는 디테일한 레퍼런스는 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심지어 서문에서는 본인의 학위과정에 대해서도 살짝 나누어주는 부분이 있어서, 외국에 와서 유학을 하고 학위논문을 썼던 나로서도 많이 공감되고 위로가 되는 일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런 책이야말로 내가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그러한 영역인 것 같다. 오랜만에 감탄하며 망설임없이 별다섯개를 외칠 수 있는 책을 읽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박사 학위 과정에 진학한 다음 계획을 수정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죠. 속으로 ‘사람들이 나를 실패자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학교에 남아 있는 일 역시 쉽지 않습니다.
교수 생활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문화에서 자라난 제게 교수를 친구처럼 여기고,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대학원생일 때 물론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교수가 되어 보니 스스럼없는 학생들의 태도에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역시 제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그대로 했습니다. 제가 귀중한 정보를 전달하면 학생들이 황송해 하면서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곱지 않은 눈빛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서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대학교에 속해 있다면 학생이든 교수든 어깨 펴고 돌아다니던 한국에서의 경험에 비하면 매우 다른 정서였습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들을 잡아서 글로 쓰면서 정보를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지 깨달았습니다.
어떤 집단도 식생활의 한 방편으로 인육을 섭취한 사례는 없습니다. 위에 열거한 드문 사례들도 모두 의례적 상징 행위거나 문화적 관습에서 벌인 일일 뿐입니다. 사랑이든 증오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열정이 의례의 형식으로 표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농경의 발달이 유전자 다양성을 늘렸다는 것은, 인류 문명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사건입니다. 농업이라는 ‘문명’이, 인류의 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면 진화는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명과 문화의 발달, 그리고 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인류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조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일까요? 혹은 어떻게든 튀고 싶은 젊은 세대의 색다른 발상이 표출된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네안데르탈인을 인종 편견이 어린 시선으로 보던 시대가 저무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네안데르탈인을 인종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던 역사, 마찬가지로 식민지와 그 원주민 역시 멸시의 시선으로 폄하하던 역사에서 벗어나고 있다고요.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다는 증거라고요.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특성은 없으며 절대적으로 불리한 특성도 없습니다.
인류학에서는 인종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나 문화, 사회 등 인문학적인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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