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하경화, 이혜민 『어차피 일할 거라면, Porto』

| Mashimaro | 2020. 9. 9. 15:32







나는 워낙에 집돌이에 가깝다.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어딘가를 여행하는 것 보다 집에서 늘어져있는게 솔직히 더 편한 느낌이다. 하지만 한번씩 기분전환상 하게 되는 여행에는 당연히 설레임도 존재한다. 하지만 늘 단발적인 짧은 여행보다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중장기적으로 머물며 여유있게 '살아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실천한 사람들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디에디트의 두 여자,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세명의 여자이기는 하다. 이들이 짐을 싸들고 디지털 노마드족을 꿈꾸며 포르투갈로 떠난 이야기이다. 따라서 발견하자마자 이 책이 끌렸다. 내가 원하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디에디트는 사실 유튜브 채널로만 알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매거진 형식으로도 무언가를 발행하고 있겠구나..라고 짐작했던 정도? 따라서 이 작가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략 어떠한 캐릭터로 비춰지고 있는지도 이미 알고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으면서도 음성지원이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영상만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어서인지 글의 생김새가 나쁘지 않다. 원래부터 에디터 출신이었던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을 했다는 사실도 놀랍고 신선했지만, 그들이 벌인 이 포르투 여행기가 아닌 생활기는 확실히 참신했다. 


사실 내용은 무언가가 많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낯선 곳을 자신들의 일상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낯선 곳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고나 할까? 단지 짦막짧막하게 풀어내는 그 이야기 뒷면에 그들의 고생, 즐거움, 소소함이 묻어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소개하는 그런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일을 짊어지고 타지에 옮겨간 그들의 '실험'과 '경험'을 잘 녹아내 준 것 같아서 즐겁게 읽었다. 나도 언젠가는 비슷한 도전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더 깊어진 것 같다. 





잠깐의 여행으로 한 도시를 다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한다. 평생을 살았지만 서울을 다 모르는 것처럼, 이 낯선 도시를 다 알고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는 게 너무 아깝다. 자꾸만 남은 날들을 세어 보게 된다.


한국에서의 갈등과 실망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달고 독한 포트와인을 마실 때마다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흐릿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흐릿해졌다. 서울의 삶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도시엔 여러 얼굴이 있다. 아름다운 산타 카타리나 거리 역시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다정했다. 나는 먼 나라에서 서울로 여행 온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곳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영수증 가득 채워 줄 수 있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긴 한 걸까.


한 도시에 오랫동안 머무른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조바심이 없다. 집 앞에 있는 허름한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한다. 만약 고작 서너 날을 머무르는 여행자의 입장이었다면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곳이다. 낯선 도시의 골목길에 익숙해지고 분위기를 익혀 가는 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경험인가.


이곳에서 우리 일상은 거의 일의 영역 안에 있다. 포르투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빨래방에 가는 아주 사소한 것들도 모두 촬영하고 기록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상을 곱씹어 보게 된다. 잘 먹고 청결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에 대해. 다른 곳에 여행을 갔을 때도, 매일 출퇴근을 하던 서울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다.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의 청춘을 기록하기보다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할머니가 된다면 이런 풍경 속에서 나이 들고 싶다. 멋진 가게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주눅 들지 않고, 나와 다른 것을 느끼는 세대와 여전히 대화하고 싶다. 그러다 또다시 아흔셋인 우리 할매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세계가 좁은 건 무릎이 아파서가 아니다. 방 밖의 세계가 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몇 번의 봄이 남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움을 안다는 건 인간으로 사는 큰 낙이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련함. 지나간 순간의 느낌이나 냄새, 소리 같은 것들이 닿을 듯 느껴지는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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