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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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댄싱스네일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 Mashimaro | 2020. 9. 8. 13:39



일본어 리뷰 [Japanese Review]

ダンシングスネイル 『怠けてるのではなく、充電中です。』




이 책은 참 오랜 시간동안 나의 리디셀렉트 서재 안에 추가되어 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사실 이런 종류의 에세이가 요즘 참 많아서인지, 오히려 자주 찾아서 읽지는 않게 되었던 듯도 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웃기게도 교보 북드림. 9월에 무료로 대여해주는 책이 같은 작가의 《적당히 가까운 사이》라는 책이었다. 앞부분을 읽다가 이 작가의 이전작품이 이 책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임을 알게 되었고, 극A형인 나는 전작부터 읽어야겠다 싶어서 이 기회에 꺼내들게 된 것이다. 

사실 짧은시간 안에 부담없이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 보다는 공감되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현재 내 상태가 멀쩡해보이기는 하지만 꽤나 자신감이 줄고 앞날에 대해서 불안감이 있는 상황인지라 어쩌면 더 와닿았는지도 몰랐다. 뭔 이상한 자존심인지 이런류(?)의 책을 읽고서는 별다섯개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당한 느낌이다.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와닿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학생 한명이 취직걱정, 대학원 입시문제, 졸업논문 문제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이녀석에게 한권 선물해줘야겠다 싶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일본어 번역본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일본어 제목은 《怠けてるのではなく、充電中です。》

사실 일본 문학시장에서 한국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는 케이스가 많지는 않다. 일본서적이 한국에 번역본을 쏟아내고 있는 수에 비하면 정말 터무니 없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등이 번역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정도랄까. 근데 요 몇년간 한국 에세이들이 번역되어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이다. 이러한 내용의 작품들이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 건 확실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특히 이번 책도 읽으면서 일본인들에게 선물하면 참 좋아하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겠지만, 일본인들은 아무래도 더 마음속에 담아두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느꼈으니까.

아무튼, 이상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묵혀두고 있던 좋은 책을 완독하게 되어 기쁘다. 같은 작가의 다음 책도 이왕 북드림에서 무료로 대여해주었으니, 기한이 끝나기 전에 읽어두어야 겠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사실’뿐. 계획에서 하나 틀어진다고 나머지 인생이 다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때로는 답을 모르는 채로 그냥 해 봐도 괜찮다. 

‘자신이 온전하지 않으니 더 나아져야 한다는 그 마음을 확인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인 채로는 어떤 지식도 자신을 찌르는 무기가 되어 버리니까요.’

가장 무서운 것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춰 부당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고 여기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행여라도 자신의 완벽하지 못한 점과 스스로의 가치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말자. 완벽하지 못함과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건 세상이 아니라, 미리 한계를 그어 버리는 자기 자신일지 모른다. 

진짜 미움받을 용기란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날 사랑하는 사람도 날 미워하는 사람도 동시에 존재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에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장 잘 알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몸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할 일을 미뤄 놓은 부채감과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릴 때가 있다. 어떤 원인에 의해 생긴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돼서 원인이 사라져도 계속 불안한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게 된다. 불안에 중독되는 것이다. 불안중독이나 그에 따르는 무기력은 대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쉽다. 

이 사회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대단한 미덕으로 삼는 것 같다. 그런데 한계라는 게 꼭 극복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극복일까?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결과가 나타나면? 계속 좌절해도 지치지 않고 다시 도전하면? 어쩌면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진이 다 빠졌을 때는 쉬어 갈 줄도 아는 게 진짜 미덕이 아닐까. 좌절감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충분한 노력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다른 형태의 통찰이 되어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러니 이미 노력이 충분했다면 이번에 그냥 힘을 좀 빼고 한 템포 쉬어 가는 건 어떨까.

물론 모든 일을 내 일 같은 마음으로 대하기란 어렵지만 그 틈새를 잘 들여다보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시간들도 분명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지금이 끝나기를 바라지 말고 과정을 살자. 이것이 끝나면 다음 것이 또 올지니 우리는 무언가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이사이에 미리 즐거움을 끼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면서도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본디 선택이란 게 어느 쪽을 택해도 최선일 수가 없다. 왜냐?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마음가짐 역시 내가 선택해야 하니까.


때로는 너무 고민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한 뒤 나의 선택을 사랑하는 것만이 최선일지 모른다. 

만족하기 힘든 상황에서 무조건 긍정적인 쪽을 보는 사람이 되라고 하기보다는 ‘긍정적인 것’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생각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만족감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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