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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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이은화 『나, 치매요... 어쩌면 좋소』

| Mashimaro | 2020. 8. 25. 12:30






최근에 치매 혹은 인지증에 대한 책을 조금씩 접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그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요양병원에서의 이야기를 읽었다. 저자는 미국의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였고 이때 겪은 에피소드들을 책에 소개하고 있다. 사실 내용은 딱 예상한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어느정도의 감동도 있고, 또 예상한 만큼의 여러가지 사건사고들도 소개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최근에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90대 후반이시니 워낙에 연세도 많기도 하셨지만, 워낙에 젊어서부터 사교성이 남다르셨던 우리 할머니이기에 오히려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요청하셨다. 젊어서부터도 본인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시고 남들앞에서는 세련되고 당당하길 원하셨던 할머니이니,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거기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할머니와 함께 살던 손주들까지 모두 유학이니 결혼이니 해서 집을 떠나고, 그동안 참 많이 외로우셨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어쨌든 그러하다보니 덩달아 요양병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요양병원의 내부환경을 확인해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몇차례 비슷한 소재의 책들을 읽었던지라 이야기 자체가 엄청 새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을 한가지 따로 뽑아보자면, 마지막 부분 즈음에 저자가 자신이 노환기를 예상해보며 적은 챕터였다. 많은 부분을 공감했고, 또 그렇게 생각해보다 보니 나 역시도 나의 모습을 조금은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서도 책을 읽는 내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은 요양원에 계신 노인분들의 모습이 특별한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위에 누구라도 그리고 나역시도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치매환자라고 할지라도 그분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역시도 사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할머니의 사례가 없었다면 거의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 역시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경험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잔인한 말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자는 의미겠지만 혹시 우리는 이 말을 건강을 잃은 자는 아무것도 가질 자격이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건강을 잃으면 건강만 잃는 것이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갖게 된 부모를 아기 기르듯 돌보는 자녀도 있다. 인지능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숫자와 구구단을 가르치고 인사법을 가르치거나 영어도 가르친다. 물론 부모가 아프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아이가 아니다. 모진 세월을 살아낸 우리들의 거울이며 현재의 모습 또한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하다.


레크리에이션 리더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퍼즐이나 게임, 하물며 색칠을 위한 캐릭터에도 유아적인 그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면 규칙이고, 음악 또한 그들의 연령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 재교육에 열을 올리며 부모를 가르치느라 정작 부모에게 필요한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받을 수 있는 삶의 자극 등을 차단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동변상련이란 말처럼 이들도 자신들을 안쓰러운 시선이나 말로 대하는 친척들보다는, 앞뒤는 맞지 않지만 일상의 일들을 두서없이 이야기해도 서로 들어주고 미소도 지어주는 요양원 환자들과 있는 것이 훨씬 편안해보일 때가 많다. 내 마음의 속죄를 위해서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것이 효도는 아닐 것이고,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녀에게 어떤 효도를 바라게 될까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양복지가 많이 발전된 후라도 부모님을 내 손으로 끝까지 모시지 못하게 되는 일은, 아시아인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중증장애를 안고 사는 부모님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희생해서라도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요양복지의 체계적인 운영과 그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 어르신들에 대한 죄의식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회복을 이뤄낸 것도 죽을 만큼의 고통을 참으며 의지의 한계를 쏟아부은 결과인데, 사람들은 중풍환자들이 정상인만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충분치 않은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열심히 운동한다면 충분히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님이 쓰러진 경우에도 자식들은 부모님이 재활의 의지를 활활 불태우길 바란다. 환자들의 경우 판단력은 정상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우울증상이 있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진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연세 많은 어르신들에게 끊임없는 의지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마냥 불쌍하다며 그저 그런 측은지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슴의 울림은 이성적인 관심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렇게 모아진 사회적 관심은 명확하고 현명한 사회적 실천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치매에 걸려 어쩌면 좋냐고 물어보는 우리의 어르신들을 위한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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