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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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 Mashimaro | 2020. 6. 13. 21:13






몇 년 전에 AI라는 존재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통해서 아마 가장 이슈화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바둑 이외에도 체스, 장기 등 인간과 AI의 대결이 몇 번 정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고있다. 이 책은 수리학자인 저자가 2011년 부터 '로봇은 도쿄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프로젝트는 일본의 일류대학인 도쿄대학의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도로보군이라는 AI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나역시도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으나 읽다보니 의외로 꽤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AI에 대한 많은 기대와 오해 혹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 사회가 되고, SNS가 사회적으로 이미 정착되었으며, 이에 따른 빅데이터의 활성화 등이 이미 진행되어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AI가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꿀 것이며, 인간의 역할을 대체함으로 인해 아마도 실업자가 다량 양산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이러한 '특이점'은 아직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도로보군의 개발과정은 나름 흥미진진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심고 딥러닝을 활용해보는 등 과정과 시행착오들을 꽤 자세히 소개해준다. 덕분에 AI가 어떠한 원리도 동작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또한 AI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지적해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독해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AI는 기본적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데이터와 딥러닝 등을 통해서 억지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는 고군분투의 과정들도 보여준다. 덕분에 도로보군은 상위 20퍼센트정도의 성적을 얻을 수 있었는데, 아마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상위권까지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보다 더 강조하는 것은 이런 도로보군 실력보다도 현재의 학생들의 독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부분이 가장 충격적이기도 했고, 또 가장 인상적이기도 한 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대학이라는 기관에 있어서 교육현장을 매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공감하는 문제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우리가 AI를 그저 두려워하며 과학기술에 대한 디스커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그보다는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 더 중요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싶다. 시대는 변화하고 인간은 적응한다. 하지만, 독해력과 같은 인간 고유의 강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습득과 유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특히나 AI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교육문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추론과 탐색은 체스나 장기처럼 조건이 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우수한 계산 능력을 통해 힘을 발휘하지만, 조건을 쉽게 한정할 수 없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AI 개발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인 ‘프레임 문제(사고 범위 문제)’이다


100만 개가 넘는 딸기를 관찰하고 나서야 비로소 딸기를 딸기라고 인식하는 아이는 없다. 대략 10개 정도만 보면 다른 대상과 딸기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계(AI)는 그런 유연성을 좀처럼 흉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그런 의미의 독해력에 대해서가 아니다. 사전에 실린 ‘독해력’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문장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많은 대학생들이 수학 기본 조사의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수학 팀의 지적은 매우 흥미로웠다. “평범한 수준의 서버를 사용해서 5분 안에 풀지 못하는 문제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해도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못 풉니다.”


우리는 흔히 머리가 좋은 사람을 가리켜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 표현일 뿐인데, 이를 과학적인 사실로 오해하면 ‘1초 동안의 연산 처리 횟수가 많음=머리가 좋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 일부 연구자나 언론이 “딥러닝은 인간의 뇌를 모방한 것입니다”라는 안이한 해설을 덧붙인 결과, “AI가 슈퍼컴퓨터로 딥러닝을 하면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하고 똑같아지겠구나”라고 지레짐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AI는 낭만이 아니다. 전자레인지가 그렇듯이 AI는 기술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에는 가능성과 한계가 있다. 이는 과거의 이노베이션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AI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OS처럼 AI 기술을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해서 큰 이익을 얻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AI의 선구자들이 인정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즉, 일본이 차세대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특이점을 일으켜서 또다시 세계 경제의 패권을 차지한다는 것은 낭만이나 공상의 영역조차 넘어선 발상이라는 말이다. 컴퓨터가 수학의 언어만을 사용해서 작동되는 한 가까운 미래에 특이점이 오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포부가 작다”라든가 “낭만이 없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지 않는 것을 온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컴퓨터는 계산기이므로 할 줄 아는 것은 계산뿐이고, 계산을 한다는 것은 인식이나 사상을 수식으로 변환한다는 뜻이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AI가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얻으려면 우리의 뇌가 의식・무의식을 불문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전부 계산 가능한 수식으로 치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학에서 수식으로 치환 가능한 것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통계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확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 전부를 논리, 통계, 확률로 환원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 데이터만을 보고 “독해력은 타고나는 것이다”라든가 “고등학생이 되면 더는 독해력이 발전하지 않으므로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내 주변에도 대학을 졸업한 후에 독해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사람이 있다. 즉, 독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교사 데이터가 존재하는 딥러닝에서 AI의 정확도가 교사 데이터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사 데이터의 설계자가 악의로 가득 차 있거나 둔감한 인물이라면 AI는 그 악의나 둔감함을 증폭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챗봇 테이(Tay)가 나치즘을 찬양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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