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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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오구니 시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 Mashimaro | 2020. 6. 4. 21:28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이정도로 끝나는게 아쉬운 책이 있었을까? 왜 이렇게 짧은거야..를 연발하며 순식간에 다 읽어버린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몰랐다. 나 역시도 미야자와 켄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패러디 한 제목인가 싶었다. 하지만, 책의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하면서 제목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오구니PD가 기획한 한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것이었고, 치매를 겪고있는 분들과 함께 이틀동안 레스트랑을 운영한 이야기였다. 최근에 안그래도 치매관련 책을 독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게 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책이 되었다. 이건 치매의 무거움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아니고, 또 어두운 장면이 등장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중간중간에 피식 하고 웃게되기까지 한다. 뭐랄까, 마치 동화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분명 실화이다. 그리고 치매를 겪고계시는 분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준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의 후반부에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아마 이 이야기가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치매를 겪으시는 분들 때문만도 아니고, 또 기획단계에서 고생한 분들 때문만도 아니다. 가게를 찾아 준 손님까지 포함에서 모두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또 하나의 의미는, 우리에게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 이러한 깨달음까지 보너스로 안겨주는 듯 하다. 실수나 틀림이 있어도 이 가게에서는 우리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 처럼,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배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다음에 어디선가 이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이 등장한다면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주문표에 주문받은 숫자만 적어 넣으면 OK인데, 할머니들이 그 주문표를 아예 손님들에게 건네고는 손님들이 직접 적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렇게 하면 틀릴 일이 없겠네!’ 무릎을 쳤습니다만, 결국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한 손님에게 떡하니 만두를 내놓고 맙니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마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잘하고 싶어’, ‘틀리면 얼마나 창피할까’, 이런 마음은 치매를 앓게 되었어도 변함이 없다.

시설 직원들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드시는 만큼 요령이 생기거든요. 기억력은 약해져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건 아주 많아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런 시각이 내 안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와다 씨는 ‘치매 환자 오구니 씨’, ‘오구니 씨는 치매 증세가 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치매’라는 말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도대체 무슨 프로젝트야?” 하고 문득 의문이 생기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치매의 ‘ㅊ’이라는 글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틀릴지도 모르지만 부디 이해해 주세요, 이런 콘셉트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아내에게 있어서 틀린다고 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겠지요…….” 그 말이 나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요리의 맛과 멋을 고집하기’, ‘일부러 틀리려고 하지 않기’―이 두 개의 커다란 축이 결정됨으로써,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그 방향성만큼은 틀리지 않고 나갈 수 있으리라.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뭐, 어때.’ 옆 사람과 ‘이 아이스커피, 당신이 주문한 거예요’, ‘맞아요, 이 콜라는 당신 거예요’ 그렇게 바꿔 마시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 실수는 실수가 아닌 것이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식당 하나로 치매에 관한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수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함께 즐긴다는, 조금씩의 ‘관용’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분명히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실수와 착오라는 것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조금만 대화를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 아닐까. 다만 ‘뭐, 어때’라는 관용의 스위치가 우리 모두에게 간단히 켜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설문지를 앞에 두고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데, 문득 깨달았다. 오픈 이틀 동안 내가 목격한 것은, ‘비용’이 ‘가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의 눈앞에는 그때 보았던 어르신들의 ‘평범한 삶의 풍경’과 함께 그보다 더 멋진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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