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워낙에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시리즈의 많은 책들 중 이 책이 우선순위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완독한 나는 도저히 하루키에 대한 매력을 찾을 길이 없었고,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하루키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졌다. 아니, 하루키가 궁금했다기 보다는 하루키의 팬들이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궁금증을 풀기에 이 책은 너무나도 적절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대부분 마지막에는 허무하거나 짜증이나거나 하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 책은 읽기 시작하자마자 엄청 공감하며 빠져들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는 일본어 번역가이고, 따라서 책의 초반에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유학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일문과로 입학하였고, 저자와 비슷한 어학연수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남얘기가 아닌 것 처럼 푹 빠져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자가 가진 생각들을 비교적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하루키의 소설은 별점 4개를 주더라도, 이 책은 별점 5개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하루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저자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팬의 입장으로서 《기사단장 죽이기》를 디스하는 대목은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마음 또한 이해되었다. 심지어 부럽기까지 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가장 납득이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저자가 어린시절에 하루키의 작품을 만남으로 인해 그녀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러구보면 내가 중학교시절 3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을 정도로 좋아했던 책은 삼국지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그의 작품을 다시 읽었을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을 풀어주기도 했다는 점. 그것이 맹목적으로 미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실질적으로 조목조목 다뤄주었다는 점이 나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한 면에서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의 백미는 '작가 구달', '편집자 윤정'과 함께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그렇게나 좋았던가.. 하는 점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꼭 읽어봐야겠다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들을 중심으로 조금 더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열다섯 살 중학생을 매료시킨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스타일이었다. 따분하다는 이유로 25미터 풀장을 가득 채울 분량의 맥주를 마시고, 함께 잤던 여자들에 대해 담백하게 말하고, 그러면서 때때로 철학적인 대사도 빼놓지 않고 읊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당시의 나에게 '쿨한 대학생' 그 자체로 보였다.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집채만 한 코끼리라도 꺼낼 줄 알았는데, 지팡이를 휘두를 대로 휘두르고 반짝이도 뿌릴 대로 뿌리더니 결국 꺼낸 게 고장 먼지를 뒤집어쓴 조화 한 송이라면 관객이 그 쇼에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 세대는 다들 좋아했으니까 그냥 좋아한다고 말했어. 나도 일문과 왜 왔냐고 물어보면 하루키 좋아해서 왔다고 하고. 근데 다자이 오사무는 좀 다른 것 같아. 다들 다자이는 속으로만 좋아하지 겉으로는 떳떳하게 말을 못 하더라고. (웃음) 너무 자기도취에 빠진 것 같고, 풋내 나는 청춘 느낌이 있어서겠지.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 자기 연민이나 자기도취 없이 담백하잖아.
난 지금 나이 먹어서 보니 다자이가 훨씬 좋아. 왜냐면 그게 훨씬 솔직한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거든. 근데 하루키는 그런 걸 정면으로 승부하지 않는 작가고, 모든 것에 거리감을 둔 채 '난 휘둘리지 않아, 난 상처받지 않아' 하면서 그런 애티튜드로 살아가는 게 마치 가능한 것처럼 굴잖아. 그게 어렸을 때 더 먹히는 것 같아. 그러니 나이 먹을수록 다자이가 더 진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돼.
옛날엔 하루키 작품을 읽으면 취향 있고 지적이고 멋있는 사람이 하는 말 같아서 그럴싸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고 문장을 읽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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