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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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 Mashimaro | 2020. 5. 27. 19:57



          





와... 정말 미치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나의 감상평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뭐랄까, 뭔가 나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나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늘 나에게 남아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그러한 마음이 더 심화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서이다. 이 책의 2권쯤에 주인공이 한 등장인물 여성에게 갑자기 말을 놓기시작해서 집중이 안된다며, 일본어 원서에도 그렇게 되어있는지 물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러한 계기가 아니라면 난 절대 하루키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읽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이참에 잽싸게 구매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물론 한국어로 된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 부분을 찾아내었고, 직접 서점에 가서 일본어 원서 상에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확인했다. 문제는 원서상에서는 이미 문제의 그 장면 이전부터 말을 놓은 상태였다. (이부분은 아마 번역상의 오류라고 생각된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민음사 관계자님.) 문제는 어디부터 말을 놓았는지까지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무료주차시간 제한에 쫓겼다는..) 아마 1권이나 2권중반 이전의 어디쯤일 것이다. 뭐 어쨌든 이 부분은 일단 작품의 흐름상 큰 영향은 없다고 느꼈다. 


이 작품 역시 여느 하루키의 작품처럼 일단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필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러한 이상한 일들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 알고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3권이나 되는 이 긴 작품을 나름 쭉쭉 읽게 되는데, 역시나 결론은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지 못하는게 아마도 이 포인트인 것 같은데, 왠지 나만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건가?하는 마음이 늘 들게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답이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나는 깊은 독서는 못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또 하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느끼게 된 점인데, 하루키는 정말 오컬트적인 요소를 좋아하는건가 싶었다. 아마도 내가 이런 오컬트적인 소재를 태생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점 또한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태엽이 감기듯이, 또는 고리가 순환을 하듯이 전쟁의 시절에서부터 현재의 시기까지 여러가지 시점을 엮어놓은 것은 좋았으나, 이러한 반복과 고리에 대한 개연성이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답답한 포인트는 바로 이러한 부분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이 어쩌면 더 현실을 반영했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상황들과 우연들로 나의 진을 쏙 빼놓는다. 무엇보다 그러한 면에서는 일단 설명이 친절하지 않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예측하려는 시도를 그만두는 순간부터 힘을 얻게 되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독서는 현실이니 비현실이니 하는 구분을 그만 두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미묘하게 권유하는 듯하다. _ 서평 : 이다혜 〈그런데 고양이는 돌아왔어?


이다혜 기자가 서평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파악하고 예측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라는 표현에 심히 공감했다. 문제는, 내가 그러한 시도를 그만두었을때 과연 이 작품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까...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어쨌든 여전히 내 수준에서는 하루키의 작품 자체보다 하루키의 팬들이 쓰는 서평이나 해석이 더 대단한 것 같아서, 이거야말로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직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을 연기했을 뿐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면, 거기에서 서로 교환했던 잠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고 나면, 우리는 모두 불안정하고 서툰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득이냐 실이냐를 따지지 말고 돈으로 사 버리는 게 최선이지. 여분의 에너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위해 비축해 두는 게 좋아.”


“그렇게 사소한 일이 의외로 중요해요, 태엽 감는 새 아저씨.”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듯 보면서 말했다. “집에 가면 거울을 찬찬히 봐요.”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에 달린 것처럼, 간단한 태엽이야. 그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 태엽은 태엽 감는 새 눈에만 보여.


너는 일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지, 가장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무슨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는, 별거 아닌 일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 누가 봐도 알 수 있고, 누가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정말 별거 아닌 일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그 별거 아닌 일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


난 말이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야. 나의 이 두 눈으로 납득이 갈 때까지 본 게 아니면 믿지 않아. 사용 설명서나 논리, 계산은, 또는 무슨 주의다 이론이다 하는 것들은, 대개 자기 눈으로 뭘 볼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거야.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대개 자기 눈으로 뭘 보지 못하지.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하려고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지.


“그렇다면, 뭔가를 분명하게 알 때까지, 자기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시간을 들이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무언가에 넉넉히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복수거든.”


나도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돈에는 이름이 없다. 만약 돈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돈이 아니다. 돈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캄캄한 밤 같은 그 무명성과, 숨이 삼켜질 만큼 놀랍고 압도적인 호환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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