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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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메모리[人]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1995년 서울, 삼풍』

| Mashimaro | 2020. 5. 4. 15:47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한 책이라니. 이 책을 리디셀렉트에서 발견하고 바로 서재에 추가해두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 일어났던 것 같다. 당시 삼풍백화점 사건도 충격이었지만, 그 이전에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있었기에 이미 더 큰 충격을 받을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나에게 임팩트가 더 크긴 했었는데, 당시 우리학교에 전학왔던 친구의 모교가 무학여중이었다. 학교위치상, 통학중이던 친구들도 많이 희생되었기에 남일같지 않은 사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 삼풍백화점 사건은 내가 무언가가 옳고 그름도 정확히 모르던 그때, 그리고 우리집 일, 내 일에 치여서 정신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시절에 일어났다. 따라서 충격과 공포는 있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또 그 이후에 어떻게 되어갔는지, 어른이 된 지금에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어쨌든, 이 책은 꽤나 자세한 기록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의뢰하고 또 많은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한방향의 이야기만이 아닌, 정말 그 시절 그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실질적인 피해자의 이야기들도 있었고, 그의 가족들, 혹은 유가족들, 사고 당시에 그곳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던 사람들, 또는 구조하러 그 현장으로 달려갔던 사람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실려있었다. 또한 지금에 와서 다시 보았을때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힘겨웠는지를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 유학와서 공부하고 있을 시기에 세월호사건이 터졌다. 당시 나는 금요일에 급한 발표수업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모든 인터넷과 TV, SNS 등을 모두 차단하고 발표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친 후 인터넷을 열었는데, 멍하니 화면밖에 볼 수 없는 사건이 터져있었다. 상상도 못하던 일이어서 정말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거기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라니. 참고로 우리집은 안산에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살았으니, 내 인생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지낸 곳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세월호사건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책 곳곳에서도 인터뷰하는 이들이 세월호사건을 언급하기도 한다. 성수대교, 삼풍. 아직도 그당시와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물론 달라진 부분도 많을 것이다. 아니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역시 피해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점에서는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책, 혹은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느낀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또한 남기지 않으면 기억하기 힘들다. 기록이라는 것은 그것을 잊지않기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매뉴얼이 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가 부디 좋은 결과물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전적으로 국가에 책임이 귀속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오래된 국가주의적 형식으로 각각의 개별적인 희생들이 위령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수색 정찰이 강력한 힘에 견인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끔찍한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 빵 가게 주인이, 갓 구워낸 빵을 건네며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막연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자연 치유 방법은 위험하다. 망각은 치명적이다. 기억하는 것이 소중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우리 모두가 이 고통스러운 재난의 수색 정찰을 끝내는 소중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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