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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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오기와라 히로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Mashimaro | 2020. 4. 1. 12:16

 

 

 

 

 

 

 

역시나 나오키상은 지금까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별 걱정과 고민 없이 책을 구입하게 되는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역시 덕분에 진작에 구입해두었지만 이제서야 꺼내읽게 되었고, 책을 다 읽은 지금, 나오키상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이 작품집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따뜻하다. 가끔씩 먹먹하기도 하고, 또 추리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조용한 반전들이 깨알같이 숨어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점들이 이 작품집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같기도 하다. 대부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거나 잔잔하다. 아니 고요하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밑에는 파란만장한 삶들이 촘촘히 엮여있다. 마치 옛날을 회상하는 어느 노인이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같은. 심지어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는 이발소 주인의 입을 통해서, 〈때가 없는 시계에서는 시계방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이 작품집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인 《쇼코의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소재는 꽤 다르고, 작가의 연령도, 그리고 배경도 많이 다르지만, 책 속에 흐르는 분위기와 색상의 이미지가 왠지모르게 많이 닮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즉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는 뜻이다. 난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엄청 좋아하니까. ^^ 작가인 오기와라 히로시는 최은영 작가와 달리 꽤 높은 연령대의 작가인지라, 아무래도 작품 속에서 전후 상황에 대한 소재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이 시기의 어른들, 혹은 일본에서의 할아버지 세대의 과거회상에서는 역시 전쟁이라는 소재가 빠질 수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 


아무튼,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게 너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랜만에 또 찾아읽게 되는 작가가 한명 늘게되어서 기쁘기도 하다. 전자책으로 발매된 책이 많이 않아서 많이 읽지는 못하겠지만, 괜찮다면 원서로라도 찾아서 몇권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글쎄요, 좋으냐 싫으냐로 따지자면, 비틀스는 아무래도 좋아지지가 않는군요. 이발사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만. 노래가 어떻다는 게 아니라, 그 머리 때문이에요. 1960년대 중반쯤이었을까요, 그들이 일본을 다녀간 후니까. 이발사라는 직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머리가 길면 남자는 이발소에 갑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했던 일을 그들이 뒤바꿔 놓았어요.


아마 제가 모든 것을 거울 너머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똑바로 마주하면 괴로우니까 말이죠.


이발소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통형 간판의 세 가지 색은 빨강이 동맥, 파랑이 정맥, 하양은 붕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내게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어렸을 때 다녔던 이발소 아저씨였다. 그 옛날 유럽에서는, 이발사가 나쁜 피를 뽑아내서 몸을 치료하는 외과 의사이기도 했거든. 그러니까 그 표식이었던 거야. 아저씨는 자신이 과거에 외과 의사였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을 좍 펴고 그렇게 말했다. 길가에 서 있는 이 가게의 원통형 간판에는 전원이 없어, 빨강과 파랑 혈관을 흐르는 피는 응고된 채 흐르지 않는다.


영어로 하면 평소에 별거 아니게 보이던 것도 달라 보인다. 영어는 마법의 주문이다. 더러워서 다들 꺼리는 쥐도 꿈속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영어로 하면 아줌마는 앤트. 개미랑 똑같다. 스미카가 이제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도 분명 앤트 탓이다. 스미카가 마지막으로 가르쳐 준 영어는 패러사이트. 아카네와 엄마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지금 아카네는 스미카 방에 있는 일러스트 영일 사전이라는 책을 몰래 들고 나와 새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하늘도 갑자기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는 순간, 아카네 머리에 등불이 켜졌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그 등불이 아카네의 엷은 안개 같은 꿈과 모험을 가차 없이 비추기 시작했다. 현실의 빛이 제대로 비치기 시작하면, 모든 게 아무 쓸모없는 잡동사니 장난감으로 변한다.

 

그때였습니다. 내가 깨달은 게. 시계가 새기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작품 목록]

  성인식

  언젠가 왔던 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멀리서 온 편지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때가 없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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