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리뷰 [Japanese Review]
사실 이 책이 단편집인지는 몰랐다. 7개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첫번째 작품인 「쇼코의 미소」 는 중편소설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 같다. 사실, 책의 타이틀이 첫번째 작품 제목이라, 첫번째 작품을 다 읽으면 다른작품은 덜 재미있겠지...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참 특이하다. 각 작품이 다 살아있는 느낌이다. 다 읽고 난 지금의 감상으로는, 한작품도 버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나한테 안맞는다고 할까? 글의 개연성을 알기 힘든것이 너무 많거나, 너무 뜬금없는 설정이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아니면 너무 파격적인 이야기가 많거나... 하는 것이 단편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 단편소설에 대한 편견을 제대로 깨준 작가가 바로 이 최은영 작가가 아닌가 싶다. 미리 얘기하자면, 그렇다. 난 이 작가의 팬이 되었다. ^^
모든 작품의 내용이 참 담담하다. 그리고 잔잔하면서 심하게 요동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굉장히 밀접하고, 그러다보니 공감을 주면서 따뜻하다. 이쯤되면 굉장히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재미없지 않다. 굉장히 작품에 집중하게만드는 묘한 느낌이다. 이런 묘한 느낌은 예전의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었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묘한 느낌을 이번 작품에서 받았다. 더욱 공감하며 읽게 된 것은 아마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물론 여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또 작가의 성별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 주었다.
거기에 더해서 「한지와 영주」의 영주는 늦은 나이까지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먼 곳에서 온 노래」에 등장하는 미진선배는, 대학시절 노래패를 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부분을 어쩜 그렇게 절묘하게 대변해 주었는지 싶을 정도였다. 「미카엘라」와 「비밀」을 통해서는 엄마와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였고, 실제로 내가 작품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담담하고 조용한 작가의 서술이 이렇게 큰 감정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또한 작품속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신파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무튼,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이, 전혀 기대도 없이 집어든 책이 홈런을 친 느낌이다. 앞으로 찾아서 읽게 된 작가가 한사람 더 늘게 되어서 기쁘다.
나의 부모도, 내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아이를 낳은 언니도, 지도교수와 연구실 사람들도 그랬다. 이십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해야 할 시기였고, 여기서 치열함이란 죽기 살기로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한 경력을 쌓는 것을 의미했다.
"넌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언니가 말했다. "넌 낭비를 하고 있는거야. 그것도 가장 멍청한 낭비를. 이십대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면, 결국 우리 엄마 아빠처럼 평생 집도 없이 살게 될 거야. 평생 남의 밑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시키는 일만 해도 자식 결혼하는 데 단 한푼도 보태줄 수 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 네가 대학원 간다고 했을 땐 교수가 되려는 목표라도 있는 줄 알았어. 그것도 아니었다면 왜 네 시간과 돈을 그런 곳에다 투자한 거야? 교수와 동료들이 널 어떻게 보겠니? 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학위라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세상 살아봐.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야. 네 속에서 나온 자식 한번 네 품에 품어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_ 한지와 영주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 태어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_ 한지와 영주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_ 먼 곳에서 온 노래
여기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소녀와 직장생활 하는 딸의 별칭이 모두 가톨릭식으로 미카엘라라는 것은 서사의 단순한 의장에 불과하다. 사랑과 그로 인한 상실의 아픔(그것이 실현된 것이건 잠재적인 것이건)이 전체를 감싸고 있으니, 나이든 사람이면 누구든 엄마이고 어린 사람이면 누구든 딸이다. 그리고 손녀이고 할머니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흔적을 찾아, 그리고 공감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물길을 따라 모두 한곳에 모인다. 그것이 최은영식 마음의 풍경의 한 전형이라고 해도 좋겠다. _ 서영채 (작품해설)
[작품 목록]
쇼코의 미소 _ 작가세계, 2013 겨울
씬짜오, 씬짜오 _ 문장 웹진, 2016 5월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_ 문학동네, 2014 가을
한지와 영주 _ 작가세계, 2014 여름
먼 곳에서 온 노래 _ 창비, 2015 가을
미카엘라 _ 실천문학, 2014 겨울
비밀 _ 문학들, 201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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