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를 결국 3권까지 다 읽었다. 서양사에 빠삭하지 못한 나이기에 1권을 처음 읽으면서 긴장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던 나인데, 첫번째 시리즈인 《로마의 일인자》를 3권까지 다 읽고 난 지금 나의 한마디 감상은, 이 책은 완전한 정치소설이다... 라는 것이다. 흔히 전개되는 전쟁의 자세한 서술 등 보다 로마 안에서의 정치적인 움직임과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 더 힘을 쏟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럼에도 재미있다. 아마도 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마지막 편에서도 우리의 주인공 마리우스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막판에 나오는 마리우스의 늙은 모습들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왠지 역사속의 주인공들은 늘 멋있는 히어로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인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부분을 읽으면서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려낸 히데요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의 늙고 약한 모습은 모두 배제한 채로 전성기의 장면에서 끝낸 그 작품말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역사소설에서 얼마나 작가가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3권에 들어와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우렐리아와 사투르니누스였다. 아우렐리아의 그 메이기 싫어하는 신여성(?)스러운 마인드가 나에게는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나도 꽤나 반골기질을 가지게 되었지만, 학창시절 모든 환경에 순응 적응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꽤나 범생스러운 나였기에, 그당시 로마에서 이러한 캐릭터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름 부러웠나보다. 또한 사투르니누스는 아마도 가장 역동적으로 그려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고 굵게 이름을 남겼다고나 할까? 아마도 현대의 세상에서도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모습이고, 이러한 캐릭터야말로 정치사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전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렇게 서서히 마리우스의 시대도 접어드는데, 호감이었던 마리우스의 시대가 지나고 비호감인 술라의 시대가 왔을때 과연 나는 어떠한 감정으로 이 작품을 읽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다음 편을 읽고싶다.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사랑한다면 그냥 사랑하는 거죠! 왜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지를 따지죠?”
“자네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가이우스 루시우스. 그건 시대가 바뀌기를 바라는 자네의 마음 탓이거나, 그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어울린 탓이야. 아마 비슷한 무리끼리 자네들 입장을 뒷받침하는 의견만 교환하다보니 그런 거겠지. 내가 장담하네만.” 술라는 매우 심각하게 말했다. “자네가 속한 그 세상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스스로를 기만하는 꼴이 되고 만다네.
“그리스인은 존재하고 로마인은 행동하지. 그러니 자네 마음대로 선택하게! 난 이제까지 양쪽의 성질을 고루 갖춘 인물을 본 적이 없어.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각각 소화관 양쪽의 구멍이라 할 수 있네. 로마인은 입이라서 그저 처넣기만 하지. 반면 그리스인은 똥구멍이라서 싸기만 해. 그리스인을 모욕하려는 말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글라우키아는 소화관에서 로마인에 해당하는 구멍으로 포도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저들은 그걸 모르네.” 마리우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가 편지에 썼던 말을 기억하나? 뒷자리의 탁상공론가, 그는 이렇게 불렀지. 헌데 저들은 뒷자리, 앞자리를 불문하고 첩보에 있어서도 탁상공론가라네. 저들은 첩보원이 지켜야 할 규칙을 궁둥이 밑까지 갖다대준다 해도 절대 모를 거야!”
하지만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가 계속 내게 묻는 것처럼, 이 새로운 법률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겠소. 우리가 정말 악을 선으로 대체하는 걸까? 아니면 악을 더한 악으로 바꿔놓는 것뿐일까?”
판돈이 걸리고 주사위를 던질 순간이 왔을 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뿐이다. 이 거대한 민중의 얼굴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바로 이 민중이 허락할 때에 한해 권력을 가질 뿐이다.
그는 원로원 의사당으로 걸어가는 대신 바이아이와 미세눔으로 도보여행을 했으며, 원로원 의사록과 속주에서 발송한 공문서가 아니니 이소크라테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의 글을 읽었다. 이 고전들을 읽은 후 마리우스는 저자들 중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는데,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상물림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긴…… . 어쩌면 이 토가가 내게 필요한 군대의 전부일지도 모르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지금 나는 불현듯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로마를 보게 되는군. 오늘 저들은 우리에게 자기들의 존재를 보여주려고 저렇게 모였네. 하지만 저들은 오늘뿐 아니라 매일같이 로마 안에서 분주히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가지. 그러다 언제라도 또다시 저렇게 몰려들 수 있는 거야. 이런데도 과연 우리가 저들을 통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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