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애플에 대한 책은 정말 많이 읽은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자세하게 읽을 수 있었던 내용은 역시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인 《스티브 잡스》였는데,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무조건 주인공을 찬양하는게 아니라 되도록 자세히 기록하려고 애썼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애플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루해질 법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한 데는 제목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리디셀렉트에 올라왔던 책이라는게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사실 셀렉트에서 빌려놓기는 한참 전에 빌려놓고는, 종료기한이 다 되어서 부리나케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기한내에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읽지 못한 채로 남겨두었는데, 다행히 밀리의 서재에도 올라와 있길래 이참에 나머지 부분을 완독했다.
생각했던 대로 이 책은 내가 알고있는 애플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다. 알고있는 기존정보에 작가의 생각들이 더해져있는 형태였다. 그래서 정말 술술 읽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술술 읽히는 것에 비해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 어느정도 지루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중후반부에서부터 쏟아내는 저자의 생각이 나름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무조건 스티브잡스를 닮아서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애초에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딴지(?)를 거는 부분도 좋았고, 또 잡스와 게이츠를 비교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소니에 대한 분석도 재미있었고.
어쨌든 애플이 예전과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관련 서적을 읽으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맥 유저이고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이폰은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애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또 나온다면 또 다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역시 주기적으로 이런 책도 읽어줘야… 싶기도 하다.
경영학자와 연구자들에게 애플은 뜨거운 감자다. 지난 몇 년간 업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기업이지만, 경영방식이 워낙 독특해 학문적인 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애플은 배울 수 없는 회사다. 애플의 방식을 똑같이 따라 해도 결코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없다. 애플의 성공은 시대적 필요에 의해 우연히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만든 광고 카피가 ‘다른 것을 생각하라 Think Different’이다.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어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하는 이 광고는 잡스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그만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ly’와 다르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은 같은 것을 만들되 조금씩 다르게 하라로 개선의 의미이다. 반면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의 혁명이나 파괴적인 혁신을 의미한다. 결국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잡스가 오랫동안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IBM의 모토인 ‘생각하라 Think’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 이후 애플은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왔다.
어찌 보면 아이맥의 히트, 그리고 이후 애플이 내놓은 제품들의 연이은 성공은 잡스가 어릴 때부터 고집해온 방식이 통하는 시대를 만나서 나타난 결과다. 어떤 이는 잡스가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가졌다고 평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잡스가 시대를 앞서간 건 맞지만 미래를 예측하고 그 자리를 선점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기호가 시대 조류와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고집을 지켜냈고, 그래서 자신을 알아보는 시대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운과 우연은 다르다는 점이다. 픽사의 성공은 운이었지만, 아이팟의 성공은 우연이다. 우연에 의한 성공은 그것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므로 운과 구별된다.
그러니까 애플의 성공은 잡스의 개성과 시대적 환경 여건이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플을 똑같이 따라 해도 애플처럼 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애플의 성공에는 보편성보다 특수성이 너무 많다.
진리는 아마 성공 비결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과 아예 무시하는 것,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잡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게이츠는 타인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잡스는 제품에 집중했고, 게이츠는 시장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했고, 게이츠는 라이선스를 제공했다. 당연히 잡스가 출시한 제품은 처음부터 완벽했고, 게이츠는 불완전한 제품을 개선했다. 결국 잡스는 장인이고, 게이츠는 사업가다.
소니는 디지털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선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10년을 너무 구체적으로 계획했고, 지나치게 앞서나갔다. 디지털 시대를 너무 치밀하게 준비했기에 실패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상 변화한다. 또 갈수록 불확실성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단기적으로도 계획대로 실현되는 일은 별로 없다. 하물며 10년의 계획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즉, 계획은 정확한 예측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획의 진짜 역할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해서 계획을 세워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계획은 이처럼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으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와익은 오히려 맹목적인 계획이 위험하다고 역설한다.
“기업들이 수립하는 계획은 지나치게 명확하고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결국 명확하고 구체적인 전략은 생각해보지 않은 사건이나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행동을 미루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성공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하는 과정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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