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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손지상 『크리틱지상주의』

| Mashimaro | 2018. 12. 26. 00:17






서평이벤트를 통해서 읽게 된 책이다. 일단 주제가 흥미로웠고, 실제로 목차를 보니 관심있는 주제들이 꽤 있어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서론에서 이야기 한 ‘각잡고 쓴 글’이라는 의미를 어느정도 알게된 것 같다. 그만큼 생각했던 것 보다 가볍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정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일단 이 책은 저자가 몇곳에 칼럼으로 게재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그래서 챕터별로 꽤나 주제가 다르기도 하다. 처음에는 주로 SF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듯 하더니, 챕터를 넘어갈수록 꽤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책비평을 하기도 하고, 문화비평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제목이 왜 《크리틱지상주의》인지 알 만하다. 하지만 반드시 비판적인 시각만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특징, 아니 이 저자의 특징이겠지만, 하나의 주제를 통해 꽤나 많은 분야와 예시들을 들어서 설명한다. 즉, 이야기가 한없이 깊어지기도 하고 한없이 넓어지기도 한다. 특정 칼럼만이 아니라, 주제가 바뀌어도 비슷한 분위기를 띄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작가의 색깔인 듯 싶다. 

어쨌든 자칫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지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주제의 끈만 잘 잡고있으면 챕터 안에서 이야기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다. 어쨌든 분명한건, 작가가 굉장한 글빨의 소유자이고, 또 그 글을 따라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읽어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생각보다 재미있게 잘 읽은 책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여러 칼럼들을 모아놓은 관계로, 전체적인 구성이 뭔가 산만한 느낌이 있다. 무언가 ‘책’으로서 구성해주었다기 보다, 칼럼을 모은 ‘모음집’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예전에 읽었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래도 그 책은 적어도 블로그 글을 모아두었기에 처음부터 각오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생각보다 진지하게 읽었기 때문에, 주제가 너무 다양했던 것이 오히려 산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즐겁게 잘 읽은 책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타키온 입자처럼 광속을 뛰어넘는 입자를 찾아내면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시간여행이란 조금 다른 의미다. 수학이 발달하면서 물리학, 심리학, 컴퓨터 공학 등 수많은 분야를 수학으로 서로 통섭하여 연구하는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여기에는 최신의 분석철학도 포함된다. 사실상 수학이나 다름없는 영역으로 발전한 분석철학 덕분에 워드프로세서에서 한자 변환을 하거나, 시리Siri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석철학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바로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사람의 개성이 훈련과 양식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영화 〈킹스맨〉 속 유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가 이 생각을 대표한다. 신사란, 본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귀족과 같은 우아한 태도를 갖춘 평민을 가리킨다. 영국인은 비록 혈통이 따라주지 않아도 양육하기에 따라 누구나 귀족 못지않게 절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본래 매너란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법도처럼 후천적으로 익혀야 할 약속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진화를 ‘열등한 것에서 우등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는 잘못된 이해다. 진화는 무작위로 나타난 돌연변이가 실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결과다. 게임,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포켓몬’은 진화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해다. 진화를 더 나아지는 것, 퇴화를 더 못나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판단이 반영된 잘못된 생각이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순수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오와라이 제3세대의 스타일, 태도, 작품을 ‘슈르’하다고 표현한다. 이 말은 1924년 시작된 전위예술 운동인 ‘초현실주의’의 프랑스어 표현 ‘쉬르레알리슴Surrealism’에서 따온 말로, 보통 비현실적이고 기발하며 환상적인 의외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와라이 제3세대의 슈르함을 단순히 ‘초현실주의’나 ‘비현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슈르함은 본래 질서를 깨는 것이어야 할 오와라이 그 자체의 관성을 파괴하는 메타적인 시도였다. 본래의 초현실주의와는 다른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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