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첫 완독책은 에세이가 되었다. 신년을 맞아 그동안 밀린, 무료대여로 빌려두었던 책들을 우선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손에 잡았던 것이 김민철 작가의 이 책, 《하루의 취향》이다. 사실 에세이라는 장르가 첫번째 선택의 이유였고, 새해를 시작한다는 무거운 느낌에서 벗어나보고자 선택한 것이 그 두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고, 또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도 더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당황하게 되는 것은, 작가의 성별이다. 사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내용이 이상하다 싶더니.. 여성작가의 에세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또 재미있는 것이, 너무 여성여성한 에세이도 아닌 것이 또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여서 그런지 굉장히 읽기 쉬운 글이었고, 또 재미있게 읽혔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취향의 존중이었다. 작가는 이를 대표적으로 '취향'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사실상 모두의 '다름'을 인정하는 그러한 시선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고' 그러하기에 모두의 '취향'도 다르다. 매우 당연하면서도, 너무 잊기 쉬운 이야기들이었다.
가족이야기, 직장이야기, 일상이야기 등을 통해서 작가는 서로의 다름과 적응의 과정, 그리고 배려와 현실등을 이야기한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술술 읽히는 쉬운 말들로 쓰여진다는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작가는 나와 또래의 여성이다. 아무래도 비슷한 경험과 상황들이 많다보니 더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나와 또래세대의 여성작가들의 글을 참 많이 보게된다. 아마도 그러한 나이대, 그러한 시기가 되었나보다. 나 역시도 이제는 어느정도 나의 생각들과 가치관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보아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도 30대가 되고, 이제 40대가 코앞이고, 결국15년 넘게 고집해온 목걸이와 이별을 고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하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 무게가, 이제는 잠깐에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취향 탓이 아니라 내가 절대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바로 그 목 디스크 때문에 나는 목걸이 사랑을 끝내야만 했다. 슬픈 것은, 내 취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크고 화려한 목걸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쇼윈도 앞을 떠나지 못한다. 누군가의 목걸이를 한참이나 쳐다본다. 아직은 남은 미련에 거울 앞에서 목걸이를 걸쳐보기도 한다. 그러고는 바로 벗는다. 이제 나에겐 나의 취향을 소화할 목 근육이 없다. 그렇게 나의 목걸이는 나의 과거가 되었다.
결국 각각의 물건들이 뭘 기억하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행복일 수도 있고, 이별일 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이불킥일 수도, 간지러움일 수도 있다. 바라건대 그 기억이 미련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때 해볼걸', '생각해보면 그땐 어렸는데' 같은 미련을 가지기엔 오늘 우리는 제일 젊으니까.
그렇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누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일이라도 그 일에 기어이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들. 허름한 일도 반짝반짝 윤기가 돌도록 만들어놓는 사람들. 텔레비전 속에서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마주치는, 자부심으로 빛나는 표정의 사람들. 그런 표정으로 자기 일에 몰두하는 일상 속 많은 사람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나에게도 너무 먼 경지다. 하지만 그 경지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까이해야 한다. 그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전파되니까.
겁이 덜컥 났다. 불과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넓어진 취향으로 누군가의 취향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뾰족해진 취향으로 누군가를 콕콕 찌르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나. 이러다 나중에는 누군가 고수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치즈를 한 입만 먹고 뱉어버리면,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 사람과 나는 안 맞다, 라고 섣불리 결론 내려버리면 어쩌나. 그러다 결국 "도대체 나와는 맞는 사람이 없어"라고 습관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나는 내가 걱정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잖아. 너는 그냥 너처럼 하면 돼.' 그 답을 받고 나는 퇴근길 지하철 의자에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외모를 먼저 생각한 걸까.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것에 그토록 분노하는 나면서, 왜 정작 나는 나를 외모로 평가한 걸까. 12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왜 '카피라이터'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니 낯선 직함 앞에서 늘 외모부터 떠올렸을까. 생각은 복잡해졌다.
야근을 밥 먹도록 하는 광고회사에서 한 팀이 그렇개 패턴을 고집하니 덩달아 우리가 일하는 기획팀도, PD팀도, 감독님도 그 패턴에 맞췄다. 아침 일찍 회의를 하고, 여섯 시 전에 일을 마치기 위해 다들 정신없이 내달렸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안에서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광고는 두 번째였다. 잘 사는 게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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