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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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초등성평등연구회 『학교에 페미니즘을』

| Mashimaro | 2018. 8. 30. 21:49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때 여성학스터디도 하고, 이것저것 페미니즘 서적도 읽었지만, 어찌보면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읽은 페미니즘 서적 중에 그래도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면 《나쁜 페미니스트》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이런 딜레마를 갖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공감해 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신선했고, 또 초등학교 교사들이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적용하고 있는 것들을 다루어 주었기 때문에 더 끌렸던 것 같다. 


이 책은 일단 매우 현실적이다. 그리고 어떤 책보다도 페미니즘에 대하여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막 인격이 형성되어가는 아이들의 상황을 통해서 보면 우리가 어떠한 문화를 만들어왔고 또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떠한 오류들을 만들어왔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이 지금까지 읽었던 페미니즘 관련 서적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알기 쉽고, 또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 가장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자료라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 문화가 현재 아이들에게 어떠한 형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실정을 제대로 확인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들과 노력을 하는지 많이 전달되었다. 나도 한때는 교사가 꿈이었던 사람으로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을까...라며 자문해보기도 했다. 이분들의 고민과 교육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이 남녀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매우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나 성폭력 등에 대한 예방교육에 있어서 현재는 피해자 예방교육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가해자 예방교육이라는 지적이 굉장히 와닿았다. 역시, 일선에서 늘 고민하고 있는 분들의 시각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참여하신 선생님들, 그리고 그 뜻을 함께하며 지금도 고민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성역할에 따른 고정관념은 너무 단순해서 아이들의 복잡하고 섬세한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단순해 보이는 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언어를 아직 전부 갖추지 못해서일 뿐이다. 아이들은 더 다양하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말할 자유가 있다. 자신이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을 싫어하는지, 스트레스는 어떤 방법으로 푸는 게 좋은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훨씬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로봇이 그려진 파란 공책이든, 꽃과 드레스가 그려진 분홍 공책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을 가질 자격이 있다. 


최근의 많은 뇌 과학 연구는 인간의 뇌는 구조와 기능에 큰 차이가 없으며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결론 내린다. 즉, 뇌에는 성차가 없으며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우리는 인간으로 나서 '남자'와 '여자'로 길러지고 있는 셈이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 발전한다. 삶에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과 감정, 생각의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다져나갈 수 있다. 이때 '이 아이는 여자 또는 남자니까 이렇게 느끼고 생각할 거야'라는 선입견이 개입하면 아이의 지식은 반으로 토막 난다. 


인간은 성별이 아닌 개별 특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물론 1년 안에 이룰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서열 꼭대기에 있던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우는 남자아이'를 대놓고 얕잡아 보는 학생은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눈물이 많은 한 남자아이가 자신을 놀린 친구에게 "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그런 거야. 넌 편견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대꾸하는 것을 본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사로서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해줘야 하는 이유이다. 


폭력적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폭력을 예방하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원인이 불균형한 구조에 있다면,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필요한 것은 부당한 구조를 인식하고, 뒤집어 생각하고, 바꿀 힘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페미니즘 교육은 인권 교육이자 민주시민 교육이다. 나를 포함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함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우리를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분명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따른 착취와 억압을 해소하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인지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 권익만을 위한 사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만을 위한 반쪽 짜리 교육으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소수자 속에서도 억압받는 소수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인권을 바라보기에 페미니즘은 다양한 사회적 차별에 더욱 민감할 수 있다. 억압받는 소수를 향한 페미니즘은 강자와 약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 사회를 다시 보게 한다. 


무지한 보호자와 여혐에 물든 남자아이들로 가득 찬 교실에서 고통받는 페미니스트 교사와 여학생만으로 학교 현장을 예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실은 그렇게 양분되지 않는다. 수업이 행복한 교사와, 스스로 평등을 이야기하는 아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여성으로서 지지를 보내주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후 '멋진 사람=남성'이라는 생각을 '멋진 사람=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꾸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꿈과 직업, 삶의 태도와 엉겨 붙어 있는 성 편견을 떼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교육은 어른이 원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힘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데에서 출발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여자아이들은 끊임없이 모순되는 두 가지 메시지를 듣는다. 하나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다운 것은 남자다운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여성성'이라고 불리는 특징들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혐오하도록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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