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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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 Mashimaro | 2018. 8. 25. 15:59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이러한 소재의 작품이라는 걸 몰랐다. 이 래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1900년대 초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더 파격적이었을 레즈비언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사실 나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작품들을 잘 읽지는 않는 편이었다. 뭐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어쩌면 강박적으로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독서가 될 것 같은 느낌에서였다. 그렇기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왠만하면 그냥 복잡한 생각 없이 스토리에 집중하려고 애쓰면서 읽었던 것 같다. 


책이 두권이나 되는 만큼, 분량은 꽤 길다. 하지만 책을 읽는데 그렇게 힘들진 않은 작품이다. 생각보다 술술 읽히고, 또 그만큼 스토리에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어떠한 때는 내가 스티븐에게 너무 몰입해서 같이 답답함과 괴로움을 느끼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내가 이 작품을 100%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이미 100년이나 지난 이 작품이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는 동의한다. 그리고, 작품해설에서 잠깐 나오는 바와 같이 어쩌면 스티븐은 레즈비언이라기 보다도 트렌스젠더에 가깝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레즈비언의 세계를 잘 몰라서 정확하게 말할순 없지만, 스티븐이라는 인물 자체는 처음부터 남성성이 강조된 '이상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라는 이미지보다는 당시 사회에서 남성성으로 부각되는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따라서 스토리상으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으로 다뤄졌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성적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나는 레즈비언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스티븐의 고민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가진 성적정체성에 대한 혼란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그가 고민했던 자신의 캐릭터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고, 심지어 하나의 매력으로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시대였기 때문에, 눈의 띄고 주목받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이상한 일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도 래드클리프 홀은 자신을 스티븐에게 투영해서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은데, 그만큼 작가의 방황이 스티븐의 방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읽을 책이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인데, 《고독의 우물》을 완독한 이 시점에서 《올랜도》가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살짝 기대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소재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고, 또 다른 지역으로 망명해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미지가 겹쳤던 것 같다. 물론 이야기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그만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여성에 대해서도 집중할 수도 있었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너 자신을 위해서 현명해졌으면 한다, 스티븐. 최선의 삶은 최고의 지혜를 요구하는 법이니까. 네가 책을 벗 삼아 배웠으면 한다. 언젠가 넌 책들이 필요할 게다. 왜냐하면......." 그는 잠시 망설였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시피 말이다. 


"난 화가 난 게 아니란다, 스티븐. 널 진심으로 이해해. 내가 말해 주고 싶은 건 네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거란다. 넌 너무 예민해. 예민한 사람들은 고통스럽지. 난 네가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해. 그게 전부다.


푸들은 의도적이고 이기적인 침묵의 횡포가 세상이 자신의 안녕과 편안함을 위해 고안한 오래되고 교활한 방식인 도피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곤 했다. 세상은 관심의 모래에다 (타조처럼) 자기 머리를 감춤으로써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진실과 대면하지 않으려고 했다. 세상은 스스로에게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면,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침묵이 황금이라면, 이 경우에도 그것은 대단히 편리한 규칙이거든."이라고 말했다. 때때로 푸들은 세상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싶은 쓰라린 유혹을 느낄 때가 있었다. 


어떤 것도 완전히 잘못되거나 완전히 쓸모없는 것은 세상에 없어. 난 그 점을 확신해.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이니까.


이들 여성은 약간 색다르게 보일 수도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실제로 색다른 존재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그들을 쳐다보는 시선은 없었다. 비록 그들이 성큼성큼 걷거나 혹은 뽐내고 싶은 자의식으로 인해 으쓱거리며 걷는다 할지라도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때 뽐내고 싶은 마음은 사실 수줍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보편적인 변이의 일부였으며 그것이 그들의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샘 브라운 벨트에는 칼이 없었고, 그들의 모자에는 연대 배지도 없었지만, 전시라는 끔찍한 시기에 그들은 연대를 형성했으며 그 이후로 결코 완전히 해산하려 들지 않았다. 전쟁과 죽음은 그들에게 살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들의 입맛에는 삶이 너무 달콤했다. 나중에야 비로소 쓴맛과 환멸이 되돌아왔지만 이들 여성은 결코 자신들을 어두운 동굴과 구석 자리로 몰아내려는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이렇게 하여 전쟁의 소용돌이는 느닷없는 보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스티븐이 대답했다. "우리가 꿈꾸는 게 언제나 진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유일한 진실은 꿈꾸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두 사람은 꿈과 같은 몽롱한 주제를 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그런 몽롱한 꿈들이 연인들에게는 그처럼 구체적인 것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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