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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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조준호 『잘 넘어지는 연습』

| Mashimaro | 2018. 1. 5. 17:08






나는 스포츠광이다. 물론 내가 하는 스포츠도 좋지만, 그렇게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니 일단 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올림픽을 할 때면 잘 아는 경기 이외에도 캐스터의 설명을 들으면서 룰을 익혀가면서까지 챙겨보는 편이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운동선수들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성이나, 여러가지 환경을 극복해내는 집념, 혹은 내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도 스포츠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매력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지은 조준호선수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아니, 비단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마 알지 않을까? 런던올림픽에서의 그 판정시비를 기억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선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사실 그 조준호 선수가 에세이를 썼어? 라는 생각에 먼저 눈이 간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유도선수였던 만큼, 「잘 넘어지는 연습」이라는 제목과 유도에서 중요한 '낙법'을 결부지어 매우 알기쉽게 풀어쓴 느낌이다. 그만큼 내가 꼽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어렵지 않고 공감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줄곧 저자가 책속에서 주장하고 있는, 본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 동메달도 최선을 다해서 따낸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사실. 우리들과 같은 최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범인(凡人)이라는 사실은 읽고있는 이를 통해 어느정도의 안도감을 준다. 왜일까? 아마도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이나 강연 등을 통해 우리는 너무 많은 특출난, 우수한 사람들을 접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도를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꿈에 그리던 태릉선수촌에도 들어갔지만, 특별한 기술도 없고 오직 끈기로 버텨온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어주었다. 스포츠선수로 살면서 본인은 재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인정하고 이른 은퇴를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결단력이 있는 쿨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필이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박사학위논문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난 연구직에는 알맞지 않은 사람같다며 좌절하고 있을 시기였다. 아무래도 공감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미친듯이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것 같다. 


유도선수이기 이전에 인간 조준호는 굉장한 노력파인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관심있는 것도 취미도 참 많은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해낼 수 있는 매우 부러운 점을 지닌 것도 같다. 그에게서는 아직도 쿨함과 젊음이 느껴진다. 그러하기에 또 이런저런 도전들도 가능한 듯한 느낌이 든다. 욜로(YOLO)라는 표현에도 어울리지만, 무분별한 욜로라기보다 진짜 고민후에 살아내는 욜로와 같은 희한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은퇴 후에 진짜 책을 많이 읽고있구나 라는 느낌도 어렴풋이 들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읽기 쉽게 참 쉬운 말로, 자신을 많이 낮추어서 글을 써주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앞으로도 가감없이 즐기며 멋지게 삶을 살아내는 조준호씨를 응원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참 잘 넘어지고', 또 '참 잘 일어서는' 사람의 이야기다. 남들보다 좋은 기술이 없어도 유도선수로는 조금 별 볼 일이 없었어도, 덕분에 책 볼 일은 많아서 이렇게 몇 자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이 책에는 희망도 절망도 없다. "죽어라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라는 헛된 희망도 없고 "에라이, 아무리 해도 난 안 돼"라는 절망도 없다. 살다 보면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만, 또 살다 보면 죽어라 안 될 것 같던 일이 되는 날도 있더라.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내 인생의 결승선도, 마침표도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승선인 줄로만 알았던 태릉선수촌 입성이 또 다른 출발선임을 깨달은 후, 아무리 크고 중요한 사건도 긴 인생을 놓고 보면 마침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내겐 언제나 '질 만한, 질 수밖에 없는' 그럴싸한 이유가 존재했다. 스스로 비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핑계마저 없었다면 그 정글 같은 곳에서 무너지기 직전의 자존감을 지켜낼 방패막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가도 가도 여전히 어두운 터널 안이고 나는 다음번에도 1회전에 패배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눈을 꾹 감았다가 뜨는 것,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아서 버티는 것. 그게 내가 선수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늘 하루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웠다면, 그리고 그 싸움에서 졌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어제의 나를 치켜세우고 오늘의 나를 위로하는 일이다. 


"근데 남들처럼 그냥 코치 하고 살면 안 되나요? 전 선배님처럼 유명한 선수도 아니라서 방송국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데." "코치 해도 되지, 인마. 근데 남들처럼 하면 안 되지. 너답게 해야지. 그게 중요한 거야."


경기가 끝나고 누군가는 왜 몸을 사리고 너를 던지지 않느냐고 타박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지금 나를 던져야 하죠? 매 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라고요? 저는 내일이 있는걸요?'


무언가를 의심하는 순간보다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오류와 맞닥뜨린다. 나는 언제나 의심보다 확신이 더 위험하다고 믿어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은 자존감을 높이기도 하지만 교만과 판단을 부추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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