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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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권오영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Mashimaro | 2023. 4. 14. 11:57

 

 

 

 

 

참 오래도록 읽으려고 대기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서가명강 시리즈를 읽으면서 드디어 읽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는 오히려 역사관련 서적을 많이 읽지 않았던 느낌이 있는데, 작년부터 관련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다시 학부시절 공부한 것들을 되살려가며 수업자료를 준비하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고대사부분 그리고 삼국시대에 대해 다시 자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권오영선생님의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권오영선생님이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쓰시는 줄 몰랐다. 정말 몇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늘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전문가가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건 정말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닌 대중들이 읽었을 때에도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늘 내가 닮고싶은 그런 부분. 특히 고대사연구와 고고학과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요소를 통해서 어떻게 상호보완적으로 지금까지 학계의 분위기가 바뀌어왔는지를 참 쉽게 잘 설명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역사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인들에게 엄청 추천하고 있는 중. 

 

사실 내 직업이 이렇다보니 주변 친구들 중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들이 참 많아졌는데, 그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이야기해주던 소재와 연구방법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추천을 안할 수가 없지. 그래서인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굉장히 즐겁게 잘 읽었다. 그리고 재미 뿐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서는 특히나 빠질 수 없는 여러 역사관에 대한 고민과 의견도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한일 고대사에 관한 부분은 더더욱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늘 그 경계선에서 답답한 부분이 참 많았으니까.. 책을 읽으며 매우.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았고, 또 고고학자로서 역사학과 손잡고 풀어나가야 할 많은 부분들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참 역사문제라고 하면 너무 불타기도하고 흥분하기도 하는 부분이 참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오히려 조금 더 머리를 식히고 냉철하게 상황들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시각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책이 어느정도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은 인문학임과 동시에 과학이다'라는 이 글귀가 참 와닿는다.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합리적 추론’이라는 고대사 연구의 기본 원칙이 완전히 무시된 난폭한 주장이지만 민족주의 사관이라는 이름만으로 면죄부를 받고, 이러한 폭거에 대한 비판은 식민사학자의 커밍아웃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학계에서 우스갯거리로 취급될 것이 분명한 주장들이 국내에서 열광적으로 갈채를 받는 현실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민족주의’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엄격한 논리가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은 인문학임과 동시에 과학이다.

 

그 누구도 객관적인 진실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수수께끼 풀 듯 고대사의 수많은 주제에 도전한다. 특히 문헌 자료가 부족한 초기 고대사, 이른바 상고사는 전문 연구자만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 시민들이 수많은 설을 자유롭게 주장하는 백가쟁명의 장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연구자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유튜버가 등가로 취급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땅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고고학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그러나 같은 식자재도 요리사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듯이, 발굴조사를 거쳐 발견된 유물은 미술사학자에게는 미술품으로, 건축학자에게는 건축사의 증거물로, 고고학자에게는 문화 복원을 위한 유물로, 역사학자에게는 역사 규명의 사료로 여겨진다. 학문간 경계가 모두 무너진 시대에 살면서 유물을 고고학 자료라고만 여기며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처럼 역사학 중에서도 문헌 사료가 가장 부족한 고대사 연구를 위해서라면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생산된 빅데이터의 활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여전히 땅속에서 찾아낸 빅데이터 활용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생활사 연구를 꺼려한다. 고고학 자료는 금석문이나 목간처럼 요리하기 좋은 재료가 아니기에 연구자는 자료가 충분히 말을 하도록 자꾸 대화를 걸고 흔들어 깨워야 하는데 그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앞으로 고대 한일관계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사고를 배제한 후, 일본을 이해하는 한국의 학자와 한국을 이해하는 일본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진행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한국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라면 조사와 보존에 뛰어들어야 한다. 민족사를 넘어서서 인류 공동의 역사 연구에 앞장서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내일을 앞당기기 위해 젊은 연구자들이 지금도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음을 밝히며, 그들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다.

 

백제와 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열도에 수많은 백제계 주민들이 이주한 건 사실이지만, 그중에는 가야계와 신라계 주민들도 섞여 있었다. 일본을 백제의 분국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한반도계 주민이 이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적지 않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주공산 상태의 일본 열도에 백제인이 진출한 것은 아니다. 8세기 일본 왕실에 백제계 여인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침소봉대해서 ‘일본 왕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백제계였다’고 주장한다면 고려의 역사 해석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려 후기 왕 중 이름에 ‘충’자가 붙는 이들은 대개 어머니와 부인이 몽골 공주였다. 앞선 논리를 따르게 되면 몽골이 고려가 자기들의 역사라고 주장해도 이를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우리의 후속 세대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서 외국의 연구자들과 세계사적인 주제를 가지고 당당히 토론해야 한다. 한민족의 순수성과 위대함을 강변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의 코리안이 형성되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의 다양한 집단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지식의 단순 집적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논의의 장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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