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강 시리즈는 사실 리디셀렉트에서 훑어보면서 주기적으로 몇 권씩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시리즈 자체를 알았던 것은 아닌데, 당시 수업준비를 하면서 한국 고대사 자료들을 찾다가 권오영선생님의 저서 중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를 발견했다. 왠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테마인 것 같아서 일단 킵해두고 책 정보를 보다가 이 시리즈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알쓸인잡을 보다가 법의학 관련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했던 터라, 이 시리즈의 1권인 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책은 완전 100% 법의학 관련서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물론 저자가 법의학자이고, 또 법의학이라는 학문분야나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실 등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에서 이미 밝혔듯이, 이 책은 저자가 서울대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책이다. 즉, 법의학이라는 분야가 굉장히 큰 소재가 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테마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중후반부에 접어들면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고찰들이 이어진다. 가장 힘을 실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존엄사, 연명치료 등에 대한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법의학자로서도 꽤 많은 부분이 관련되어있어서 실질적으로 숙고해야하는 영역이기때문에 꽤 무게를 실어서 다루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살에 대한 이야기 등도 나누는데, 기본적으로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 혹은 철학에 이야기보다, 그걸 넘어서 우리 사회가 또 우리라는 공동체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할지에 대한 의문과 의견을 동시에 던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 또한 법의학자로서 많은 시간 고민하고 생각했던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책의 후반부에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다룬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언급을 하니 이 책이 빠질 수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 고생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지만, 이 책을 읽게 되었던 동기 자체가 너무 많은 책에서 언급이 되기 때문이었는데, 여기에서도 등장할 줄이야. 다시 한 번 꾸역꾸역 읽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시리즈가 취미와 관심사에 대해 마니악하고 덕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있게 쓰여지는 시리즈라 너무 좋아하는데, 이 서가명강 시리즈는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딥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어 또다른 의미의 매력을느끼게 된 것 같다. 덕분에 조금씩 찾아읽을 시리즈가 또 늘었다.
쉽지 않게 들어선 법의학자의 길이지만, 법의학자는 그렇게 빛이 나는 직업은 아니다. 짐작하듯이 법의학을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진다거나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들에게 존경이나 감사 인사를 받는 것도 아니다. 법의학자는 항상 죽은 자와 함께하니 그럴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죽은 자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한마디도 할 수 없으니 단지 그들 삶의 마지막 장면에 빛도 없이 등장하는 카메오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실 나도 다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워낙 많은 질문을 받다 보니까, 또 그 질문이 한동안은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스스로가 열심히 연구하게 된다.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해보는 등의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렇듯 나를 향한 수많은 질문이 오히려 거꾸로 나 자신을 지식적으로나 법의학적으로 성장시키는 측면도 있다.
법의학자는 확실한 증거로써만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든,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든 서사에 관심을 두기보다 명확한 증거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것이다. 경험으로 쌓인 느낌이라든지 감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결정적 판단은 오롯이 백퍼센트 과학적 증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법의학이다.
안락사 또는 자비사, 어떤 표현을 쓰든 의도적인 삶의 중단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의미를 갖는데 문제는 과연 삶이 의도적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인 숙고가 필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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