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를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타이밍이 절묘하긴 했다. 막 《책, 이게 뭐라고》를 완독하고 장강명작가의 매력에 아직 빠져있는 이 때에, 타이밍 좋게 밀리의 서재에서 새로운 아무튼 시리즈를 발견했다. 근데 현수동? 제목때문에 살짝 주저되기는했다. 아무튼 시리즈 중에 김민섭 작가가 쓴 《아무튼, 망원동》을 읽은지 얼마 안되기도 했던터라... 또 비슷한 분위기일까? 하며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설명을 보고, 으잉? 이건 뭐... 장강명 작가스럽다고 해야하나? 현수동이 가상의 공간이었다니..!!! 이런 기발한 발상에 바로 인정! 그새 읽고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동했다. 누군가의 찐하고 오타구적인 생각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아무튼 시리즈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라니... 과연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장강명 작가다운 발상이 아닌가 생각했다. 늘 내가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이런 작가들의 발상을 보면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또 다른 장강명 작가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책의 발상 자체는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독특할 것 같은 느낌인데, 그가 상상하고 그리고 또 작품속에 꾸준히 등장시키는 '현수동'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오히려 분노(?)를 느꼈던 나로서는 '현수동'을 향한 장강명 작가의 플랜과 애정이 굉장히 성실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배경이 되는 주변지역의 역사와 현황까지 매우 성실하게 설명해준다. 과연 기자출신다운 성실함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이 책은 아무튼 시리즈만의 캐주얼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꽤 묵직한 책이 되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구보니 이거 큰일이다. 뒤늦게 장강명 작가의 늪에 빠질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 《재수사》를 읽기 위해 얼른 《죄와 벌》을 먼저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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