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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이나다 도요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Mashimaro | 2023. 3. 16. 02:11

 

 

 

 

 

이 책은 100% 책 제목때문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제목 자체가 강력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영화를 빨기감기로 보는 지인이 있는데다가, 나 역시도 빨리감기까지는 아니지만 스킵하며 보거나 유튜브에서 축약본 등을 보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나 찔리는 부분도 있었고, 이 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서 읽게 된 것 같다. 

 

사실 큰 기대를 하고 읽지는 않았다. 일본의 신서시리즈 혹은 실용서나 사회과학쪽 책들에는 큰 기대를 하지않고 있다. 생각보다 겉핥기 식으로 끝나거나 깊이 들어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정리해버리는 책들을 매우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를 갖지않고 읽어서인지 이 책은 꽤나 재미있게 잘 읽었던 것 같다. 일단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관련업계의 사람들 그리고 제목처럼 소비하고 있는 컨텐츠 소비자들을 함께 인터뷰하면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창작자/제작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잘 정리해서 풀어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MZ세대의 경향으로만 치부하고 세대간의 이야기로 가져가지는 않을까 우려아닌 우려도 하면서 읽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물론 세대간의 경향과 문화의 다름도 있기에 마치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은 비단 MZ세대에게서만 나타나는 경향이 아니기에, 이러한 사회현상 혹은 마인드의 전환에 대해서 시대적인 문제로 진지하게 접근하고 풀어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편중된 시선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달해 준 점 또한 좋았다. 앞으로 또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주제 역시 다른 국면에서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그렇다면 또 그거대로 하나의 레퍼런스로 사용될 수 있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약만으로는 작품의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이상론은 출판 현장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매일 대량으로 간행되는 책의 홍수 속에서 어느 한 권을 골라 좋은 위치에 진열하게 하려면 이목을 끌 만한 내용이 필요하다. 일반 독자뿐 아니라 책 전문가인 서점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부분인데, 만약 정보 이해력이 낮은 시청자가 이 작품의 주제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어도 소외당하지 않게 다른 즐길 거리를 첨가해요. 그래서 드라마 자체를 제대로 즐기게 하죠. 그렇게 각본을 써야 해요.” 정보 이해력이 낮은 시청자가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토 씨의 지적대로 “작품에 클레임을 걸면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해력이 높은 시청자는 작품의 깊이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NHK 아침드라마 《아마》(2013)도 그랬어요. 이해력이 높은 사람은 디테일한 서브 컬처나 1980년대의 시대 배경을 파보며 즐겼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유메메 씨는 명문 사립대학을 졸업한 후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논리력, 사고력, 언어 능력 면에서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상업영화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평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 그 이면에는 “내 해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만든 이의 의도’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해두자. 만든 이(발신자)는 작품에 메시지를 담는다. 제1장에 나온 고바야시 씨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각본가에게는 각본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제2장에서 마키 씨가 “보는 이에게는 작품을 오독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했듯이 수용하는 자에게는 해석의 자유가 있다. 그러니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다.

 

Z세대의 부모는 2022년 현재 40~50대가 많다. 이들의 육아 트렌드는 ‘엄격함’보다 ‘상냥함’이다. 자녀와 친구처럼 쇼핑을 가거나 연애 이야기를 나누고 트렌드를 공유하는 부모가 많다. 더불어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엄격하게 지도하지 않는다. 체벌은 차치하고 조금이라도 엄하게 말하면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신입사원들에게서도 두드러진다. 나이 많은 선배가 배려하는 뜻에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일단은 해보라”고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괴롭힘’에 가깝게 느껴진다.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받으면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처음부터 정답을 알려주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품만 보고 싫은 작품은 보지 않는다는 당연한 소비 행동의 연장선상에 “좋아하는 장면은 반복해서 보고 싫은 장면은 건너뛴다”가 있다. 한 대학생은 이런 현상이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라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작품 단위로 좋고 싫음을 판단했지만 요즘은 장면 단위, 감정 단위로 좋고 싫음을 따진다. 싫은 부분은 건너뛰는 것뿐이다.”

 

세상에는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타자’가 존재한다. 그 가치관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존재만큼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존중은 ‘마주하고 이해하는’ 의무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치를 공감에서만 찾으려는 사람은 ‘공감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마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한 데다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자기 생각을 보강해줄 이야기나 말을 찾고 그것만 강화하게 된다.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그들은 “세상에 자신과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혹은 그런 사람을 쉽게 적으로 치부한다.

 

더 직접적으로 “빨리 감기로 보면 감정 이입이 덜 돼서 좋다”라는 대학생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감정 이입이 안 되는 건 작품 감상에 부정적 요소가 아닌가? 그럼에도 이들은 감정을 절약하기 위해 작품에 너무 깊이 빠지기를 꺼린다. 그들은 매일 쏟아지는 대량의 정보와 이야기에 지쳐 있다. 그래서 콘텐츠를 담백하게 접하고 싶어 한다.

 

물론 다들 이런 현실을 반기지는 않는다. 실제로 바우만은 ‘리퀴드 모더니티’의 개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바디와 에커트 역시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리퀴드 소비든 빨리 감기 시청이든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습관이 되었다는 사실은 순순히 인정해야만 한다. 전기가 없었던 불편한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 빨리 감기라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시청 스타일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미디어나 디지털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지식인들이 불쾌감을 표현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지금은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도 등장했을 당시에는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방법이란 출현 후 얼마간은 비바람을 맞기 마련이다. 지금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라는 새로운 방법은 제작자로부터 쉬이 환영받지 못한다. 기존의 지식인들로부터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집에서 레코드를 듣거나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행위가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라는 대의에 눌려 허용되었듯이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라는 시청 습관도 언젠가 많은 이에게 허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옛날에 레코드 같은 건 진짜 음악 축에 끼지 못한다며 쌍심지를 켜던 사람이 있었대”라며 웃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웃음을 당하는 쪽이 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빨리 감기에 대해 일일이 쌍심지를 켜는 사람이 있었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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