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새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작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작년부터 이어서 읽던 책들 중 새해 첫 완독책이 되었다. 그리고 새해 첫 완독을 한 책이 너무 좋았던 책이라서 기쁘다. 뭔가 든든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정세랑 작가의 책은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고, 《보건교사 안은영》과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었던 것 같은데, 두 작품 모두 크게 무겁지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 같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정세랑작가의 이미지는 이 두 작품과 같은 경쾌함과 즐거움의 이미지가 더 컸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크게 바뀐 것 같다. 유쾌함과 작가 특유의 패러디적 요소는 살아있는데 그것이 주된 장치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 처럼 진중한 책도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찌보면 첫 부분을 읽을때부터 분위기를 감잡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떠한 사람에게는 다소 불쾌하게 시작되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너무 호기심 가득하게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최근들어서 여성의 삶과 여성 몇 대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이 꽤나 있었지만, 이렇게나 기발하게 쓴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을까? 물론 당연히 이것은 여성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혹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전반적인 사회문제와 우리의 인식들을 잘 녹여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린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인데, 뭐 이 소설이 굳이 열린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독자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고 있는 상황과 대사들이 모두 하나하나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전달된다. 읽는 이들에 따라서 더 부각되어 무거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생각보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각자의 시선으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 있어서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은 이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들 정도로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다른 데서 인정해주지 않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데려다 자기 자신으로 자연스럽게 있게 해주면 말야, 남들이 돈을 두 배 불러도 안 도망가더라고.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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