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 책 대체 뭐지? 정말 별 기대없이 가볍게 읽으려고 펼친 책인데, 정말 너무 너무 좋았다. 그저 잔잔하게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앞의 몇 챕터를 읽자마자 기대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두고두고 곱씹어 읽을 수 있는 책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이 책은 에세이도 아니고 자기계발서적도 아니다.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사실 시작은 정말 잔잔하게 시작한다. 휴남동 서점 주인인 영주를 중심으로 영주의 이야기, 서점에 오는 손님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바리스타 이야기, 북토크와 강연을 하게 되는 작가의 이야기, 단골손님들의 이야기 등등 이들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을 풀어준다. 그러면서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작가의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어려운 생각이라든지, 대단한 인문학적인 지식을 전달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해준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서 엄청나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서점이 무대이다보니, 책을 소재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책 내용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많은 작품들이 등장하던 책으로는 《타인들 속에서》가 생각나는데, 《타인들 속에서》에서는 주로 SF나 판타지 장르가 주로 등장했다고 한다면, 이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역시나 궁금해서 몇작품 찾아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외의 포인트는 심쿵포인트가 있었다는 건데, 연애세포는 거의 죽었다고 볼 수 있는 내가 설레임을 가지고 읽었을 정도라는게 인상적인 부분이다. 사실 다른사람은 그리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승우의 시선과 대사를 통해서 혼자 꽤 설레였던 것 같다. 화려하고 멋있는 느낌은 아니지만, 든든하고 고마운 느낌이랄까. 누가보면 답답할 수도 있는, 연애라고도 할 수 없는 이 에피소드들이 나에게는 꽤 설레이는 심쿵포인트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러한 점을 포함해서 나에겐 정말 반전에 가깝도록 좋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민준을 바라보며 영주는 그에게 묻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은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영주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 민철 엄마에게 추천해줄 책이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 서점이 영주라는 한계 때문에 편협한 공간이 된 것만 같아서였다. 영주의 취향, 영주의 관심사, 영주의 독서력에만 맞춰진 공간. 이런 작은 공간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꺼내 읽은 책을, 그 역시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타이밍이란 것이 존재하니까.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삶에 관해 말하는 책.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진솔하게 말하는 책. 영주는 민철 엄마의 벌게진 눈을 떠올리며 다시 답을 해봤다.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영주는 민준과 한 공간을 사용하며, 침묵이 나와 타인을 함께 배려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느 누구도 상대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말을 지어낼 필요 없는 상태. 이 상태에서의 자연스러운 고요에 익숙해지는 법 또한 배웠다.
평소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보이는 영주가 책을 읽을 땐 뭔가, 그래 좀 뭔가, 뜬구름 잡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민준은 재미있었다. 마치 한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사람처럼, 영주는 눈 하나로는 현실을 보고 눈 하나로는 꿈의 세계를 보는 사람 같았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에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그런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 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아름 : 흠......, 전 책을 읽을 때 기억에 대해서는 크게 집착하지 않아요. 물론 책 내용이 연결돼야 하니까 앞의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해야 하긴 하죠.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날 땐......,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대게 어느 정도는 기억나요. 그래도 기억이 안 나면 연필로 체크해놓은 부분만 읽고 나서 다시 읽기도 해요.
영주 : 기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책에서도 하셨어요. 그래도 되나요? (웃음)
아름 : (웃음) 전 된다고 생각해요.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에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이상한 일이었다. 독자로선 좋은 글과 안 좋은 글을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물론 영주의 취향이 잔뜩 들어간 판단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 글은 판단이 안 됐다. 마치 글이라곤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정말 모르겠기만 했다. 이 글, 어디 내놔도 괜찮은 글일까.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세요. 이 글 전체가 대표님의 그런 마음을 잘 묘사해주고 있잖아요. 혹시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을까봐, 이 문장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정도도 충분해요. 그리고 이 문장이 담백해서 더 좋아요."
승우는 좋아하는 일을 5년 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5년 했다. 어떤 삶이 더 나았을까? 글쎄.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삶이다. 더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서가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다보니 공허해졌고, 공허감을 이기려 한국어에 몰입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대충 아무 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거짓말하기 싫어서요." "무슨 거짓말이요?"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어떨 땐 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영화를 평론하는 영화평론가라는 말이야. 누가 이름 붙여줄 필요 없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럼 된 거 아니냐, 산다는 게."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 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네가 생각하는 사람인 게 참 좋아. 그런데 생각이란 게 가끔은 사람을 참 별로로 만들기도 하더라. 너 같은 애들은 꼭 마음보다 생각을 앞세우니까. 그러면서 마음을 모르겠다고 해. 실은 알고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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