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드디어 다 끝냈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굳이 미친듯이 어려운 책이거나 너무 안읽히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단지 중간부분에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루해질뻔 한 파트가 있었다는 정도. 사실 친구들과 함께 읽은 책인데, 중간파트의 챕터는 혹시 다른 사람이 쓴게 아닐까 할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부분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나쁘지 않았고, 또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이부분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이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제목만 보아도 참신하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인류학적으로 봤을때에는 나름 빈번히 있을 수 있는 발상(모기를 통해서 세계사를 둘러보는 관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게 제목이나 소재선택은 기똥차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거기에 낚여서(?) 나도 이 책을 읽은 거겠지만..ㅎ
사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조금 실망을 한 부분이 있다면 처음에 기대치가 너무 커서였을 수 있다. 사실 첫 챕터를 읽기 시작했을때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모르던 모기의 생물학적 특성을 포함해서, 모기매개의 질병인 말라리아가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아니라 기생충병이었다는 점이라든지 흥미로운 사실이 많아서 기대감을 높이고 읽게되었던 것 같다. 물론 초반에도 '나는'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역사이야기였으니까.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이다. 즉, 곤충학자나 질병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책을 요약해보자면 '모기를 통해 본 역사'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사실 빌브라이슨을 예상하고 읽게 된 책의 내용이 중반부터 역사이야기로 흐르면서, (그래도 여기까지는 좋았다) 특히 중반에 매우 디테일하게 서술되는 미국역사파트를 읽을때에는 사실 좀 지루해진 감이 없지않다. 아마도 내가 미국사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 책을 힘들게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 중 하나는 아마도 모든 것을 모기탓(?)으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의 취지 자체가 그렇다. 모기의 탓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나열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초반에는 진짜 모기때문인지 아닌지 하는 포인트까지 모두 모기탓으로 몰고가는 느낌도 살짝 있어서, 그것을 억지스러움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글투가 살짝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즉, 독자에게 신뢰감을 끝까지 전달하지 못했던 포인트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게 후반부에는 아무래도 남아있는 기록이나 근거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기에 좀 나아지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모기는 주인공도 아닌 것이, 자꾸 역사이야기를 위해 이용당하는 느낌이 큰데, 후반부 몇개의 챕터에서 비로소 다시 모기가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책의 재미도 돌아왔다. 내가 아무리 역사관련 일을 하고있고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나 이 책에서는 '모기'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방대한 내용들을 열심히 다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분명 이 책을 쓰기위해서 저자는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저자의 글보다는 인용된 몇몇 작가와 레퍼런스들에 더 관심이 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모기와 모기매개 질병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고 관심도 생긴 것 같다. 마치 《총, 균, 쇠》 중에서 질병파트, 특히 모기매개 질병파트만 때어내서 읽고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글 쪽이 확실히 내 취향인 것 같다.
그런데 데오도란트나 사랑하는 맥주, 밝은색 티셔츠를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불행히도 혈액형, 자연적 화학물질, 박테리아, 이산화탄소 양, 신진대사, 체취 등 모기에게 매력 어필이 되는 요인 중 85퍼센트는 이미 당신의 유전자 회로에 고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모기들은 눈앞에 나타난 그 어떤 임기 표적도 공격할 것이다.
역사라는 창고는 라벨 붙은 박스별로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사건들이 각각 고립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상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 에피소드가 한 가지 사실만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은 그보다 거대한 역사적 내러티브 안에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영향력과 폭포처럼 쏟아지는 인과관계의 결과물로 탄생한다. 모기와 모기 매개 질병 또한 마찬가지다.
말라리아의 흔적은 최근 터키 남부의 신석기 시대 정착촌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9,000년 된 유골에서도 확인되었으며, 투탕카멘을 비롯하여 최고 5,200년 된 이집트와 누비아의 유골 및 미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북전쟁을 일으킨 원인은 매우 복잡다단했다. 노예제에 대한 남북 간 의견 차이 정도로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었다. 노예제가 확실히 원인들 중 하나이기는 했으나 다른 원인을 모두 배제할 만큼 중대한 원인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 요소 또한 한몫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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