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전혜진 『280일』

| Mashimaro | 2022. 4. 15. 11:34

 

 

 

 

 

이 책 역시, 꽤 오래 전에 읽겠다고 챙겨뒀다가 이제서야 펼쳐보게 되었다. 여러 다른 책들에 밀려서 그렇게 된 면도 있었지만, 대충의 소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준비가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섣불리 책을 시작했다가 결국 끊지못하고 주구장착 책을 잡고 읽게 되었다. 그만큼 스토리성에 있어서도 흡입력이 있었고, 또 이야기가 너무나도 현실같아서 책 속에 푹 빠져서 읽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작품은 정말 너무 현실같은 이야기라서 혹시 에세이인가 싶은 정도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인상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고, 나름의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4명은 모두 나름의 터전이 있고 직장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사회적 지위(?)로 봤을때 그리 힘든 사람들이 아니다. 이러한 여성 4명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들이 주된 축을 이룬다. 이 중에는 아이를 너무 원하지만 여러번의 유산의 경험을 가지고 난임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를 크게 원하지는 않지만 남편의 강력한 의지로 인공수정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사회적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타이밍에 임신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서 자영업자이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임신을 맞이하는 것 처럼 보이나 그렇지도 않은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다르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서 많은 여성들의 고충과 현황을 대변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나오는 남편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을 정도의 남편상들도 아니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 쓰여진 작품이고, 또 남편들이 분명 실수를 하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 정도면 매우 양호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작가 후기에 나오는 내용에서는 이 이야기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월드 이야기는 아예 넣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 역시 매우 좋았던 부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통해서 '임신'이라는 상황을 통해 겪을 수 있는 참 많은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비록 여성들의 고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를 통한 남편들의 시행착오와 고군분투도 함께 그러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배우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비단 세간에서 말하는 숭고하고 희생하고 어려운 의미만이 아니라, 극히 현실적으로 어떠한지, 우리가 어디까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이러한 우리의 감정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우연히 이 책을 읽은 날 아침, 같은 학부에 근무하는 다른 선생님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던 이야기를 잠깐 나눴었다. 우리 학부는 교수가 20명이 넘는 규모의 학부이다. 그 중에 여성은 나를 포함 단 3명. 물론 대학이라는 직장은 다른 직장에 비해 이러한 분야의 복지가 훌륭한 편이다. 이해도도 높고 배려도 있다. 문제는 여기까지 오는데 있어서의 환경은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도 그 선생님께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면서 나와는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너무나도 많았다. 심지어 나는 아이는 커녕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조차도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했던 부분,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배려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참 많이 떠올랐고, 또 임신이라는 과정이,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과정이 이렇게나 험난하고 위험하고 이정도까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던 것 같다. 많은 후기를 보면서 남성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많았다. 나도 찬성한다. 그리고 나처럼 이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해서 저지르는 실수들도 참 많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까. 이제 입덧해야지, 토하고 아프고, 심하면 밥뿐 아니라 물도 잘 안 넘어가고… 정말 힘든데 이제 시작이니까. 허리 아프고, 살 트고, 새벽까지 여기저기 가려워서 벅벅 긁다 보면 동 트고 있고. 앞으로 겪을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뱃속에 있는 게 제일 편하다는 말을 흔하게들 하지만, 그 말 제일 잘 하는 건 뱃속에 안 넣고 있던 사람이더라.

 

그런 거 챙기는 게, 회사에 미안한 일이 되면 안 돼. 건강히 아이 낳고 돌아와서 더 열심히 일하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선배가 있는 걸 써야 후배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거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난 그런 건,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러면서 개중에 아주 애정도 깊고 모성애도 강하고, 그런 사람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가 위대하다,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세상이 여자에게 그러니까 어머니답게 위대한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가깝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보면 또 다른 생각도 들고.”

 

인사과에 들러 사표에 대해 보고했다. 노조 사무실에도 들렀다. 하지만 이 회사에 계속 몸담고 있을 거라면 모를까, 자신은 이제 회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고, 부장은 내부 사람이다. 이 문제는 그저, 크리스마스 직전의 조금 소란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고, 부장은 자신을 망신 주고 나간 그 ‘임신한 여직원’에 대해 두고두고 씹어 댈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십 년이 넘게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왔다가, 이제 그만두고 나서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래요. 지금 여기 조리원에 보니까, 반은 임신하고서 회사에서 잘린 사람, 나머지 반은 출산 휴가 쓰고 애 낳으러 온 사람들이에요. 애 낳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중간에 회사 일 때문에 연락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 아마 다들 일을 하고 있었을 거야. 공부도 다들 열심히 했겠지. 그런 거 알아요? 대충 입고, 대충 머리에 떡이 지고 가슴은 다 풀어헤치고, 유관이 막혀서 젖이 안 나온다고 마치 소 젖 짜는 것 같은 기계를 가슴에 매달고 마사지를 받고, 아침저녁으로 유축을 하고, 그래도 젖이 안 나온다고 괴로워하고. 조리원 이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에 칠칠치 못하게 아기가 토한 걸 묻히고 다니는 그냥 아줌마인데, 복도에서 전화를 받더니 목소리가 딱 프로페셔널해지는 거야. 있잖아요. 회사에서 과장이고 팀장이고 그런 사람이, 여기선 자기가 젖이 안 나온다고 뭐가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괴로워하는 거. 그런 걸 맨날 보는 게, 사람을 아주 돌게 만들어요.” “….” “다들 자기 인생이 있고 다들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다 부정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그냥 젖 짜는 포유동물들같이 앉아 있다고요. 난 그게 정말….”

 

하지만 어떤 일은, 공감은 할 수 있어도 섣불리 위로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런데 말이에요 출산은 서커스가 아니라 사람 목숨이 둘이나 걸린 문제예요. 산모님의 경우는 셋이죠. 그러니까 무조건 안전해야 해요. 보수적으로 해야 해요.”

 

“하지만 말이에요, 질식 분만을 해야만 진정한 출산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무통 분만을 한다고 모성애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제왕 절개를 하면 아이에게 잘못하는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 해야만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게 아니에요. 지금 목숨을 걸고 뱃속에서 아이를 키워서 생명을 주는 건데.”

 

“응. 아픈 것도 무섭고, 불확실한 게 싫어서. 근데 의사 쌤이 그러더라. 자연 분만은 하루 이틀 죽도록 아픈 뒤 괜찮아지는 거고, 제왕 절개는 그걸 일주일 동안 아픈 거라고. 일시불이냐 할부냐의 차이지, 아픔의 총량은 비슷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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