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후반쯤에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방 또 신간이 나왔다고 좋아했더랬다. 하지만 아직 전자책이 출간되지는 않았었고, 기다리다가 전자책이 출간되고나서 구입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서야 읽은 것. 워낙에 단편이 너무 좋은 김초엽 작가이지만 《지구 끝의 온실》를 보면서 장편도 참 재미있구나...를 느꼈는데, 이번에는 중편소설 쯤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나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은 너무나도 좋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단지 장르적으로? 혹은 분위기적으로? 김초엽 작가의 다른면을 보게 된 것 같은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작품들은 따뜻함도 있었고, 현실을 세련되게 꼬집어내는 느낌도 있었다. 거기에 연구자적인 느낌도 첨가해주면 내가 아는 김초엽작가의 작품이구나...하고 끄덕거릴 터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마도 작가의 어두운면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아니다. 뭐 꼭 어두운 면이라고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작가가 디스토피아적인 스토리를 이렇게 풀어낼 줄이야... 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스토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구 끝의 온실》이 떠오를 정도로 약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기에 크게 이질감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다크투어 혹은 재난투어라는 설정은 얼마 전에 읽었던 《밤의 여행자들》와도 비슷한 설정이었기 때문에 이 또한 크게 위화감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충격적이긴 했지만, 있을 법한 결말이었다. 솔직히 설마...하면서도 예상은 되기도 했다는. 심지어 생각해보면 소설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복선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말이 특히나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깨...하고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김초엽 작가가 이러한 결말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 보면, 아마도 자신도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그곳에서 겪었던 감정을 떠올렸을 때 문득 생경함이 느껴졌다. 거기서 나는 대체 무엇을 즐긴 걸까, 왜 그곳이 마음에 들었을까,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죽음은 투어의 대상이 된다. 여행자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이면서 침범하고 훼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쓰며 그 사실을 생각했다.
나는 이해의 실패로부터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그 실패의 결과를 파국으로 밀어붙인 시도였다. 쓰면서 '아,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했었지' 새삼스레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다. (김초엽_작가의 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 시점, 어느 장소...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이 일상으로 돌아왔을때 참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으로, 하지만 누구나 생경하게 느껴졌던 어떤 기억이라는 현실과 연결시켜서 글을 썼던 것은 아닐까? 역시나 현실을 잘 반영하는 SF적인 면모가 다른 방식으로 이 소설에서도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디스토피아 소설을 그리 즐기지는 않기에 쉽게 읽은 작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손에서 놓지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던것 같기는 하다. 늘 기빨리며 읽게되는 장르이지만, 김초엽 작가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 작품이기도 해서 꽤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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