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소설가 김초엽 강력 추천!'이라고 적혀있어서였다.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름만 보고 바로 집어들어 읽게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또 이런 작가들이 추천했다고 하면 또 그 책 또한 장바구니나 위시리스트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대여해 두었던 책을, 2022년 새해가 되어 첫 책으로 완독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나서 이 책을 왜 김초엽작가가 추천했는지는 바로 납득이 되었다. ㅎㅎ 아무래도 김초엽작가가 SF를 주로 쓰는 작가라는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생화학 석사까지 했던 백그라운드가 있기에 생물학자인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더 깊고 재미있게 다가왔으리라... 솔직히 내가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테마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풀어써 준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도 본인이 이 연구가 좋아서 오타쿠처럼 신나게 설명하는 모습이 텍스트너머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느낌... 알지..ㅎㅎ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같이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다가 포닥을 하는 현재 초파리를 연구하고있는 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연구의 내용들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게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같은 책들이 그랬다. 내가 과학도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같은 연구직이라는 직종의 문제 그리고 비슷하게 겪어왔던 대학원시절의 이야기들이 공감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해도 동일하게 앞으로의 방향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도 닮아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비단 나만이 그런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포인트일 것이다.
작가도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글을 읽게 되면 우리는 늘 마지막에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나 역시도 읽는 내내 작가를 응원하고 있고, 또한 현재 비슷한 위치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동료들을 응원하고 싶다. 올해도 지치지말고 함께 화이팅 합시다!
그 뒤로 한동안은 탐닉하듯 그가 밟아온 연구의 자취를 훑었다. 정말 즐거운 과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자괴감이 커졌다. 논문의 요지가 되는 질문의 수준도, 그 질문에 답하고자 근거를 모으는 실험의 수준도, 내가 하고 있던 연구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나 궁금해할 만큼 중요하고 재미있는 질문을 주제로 삼아서 당대에 할 수 있는 최첨단의 실험 기법을 모두 동원해 탄탄한 증거를 기반으로 대답해내는 과학! 나는 그야말로 압도되고 말았다. ‘이게 대가의 연구구나. 나는 졸업할 때까지 이런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근처에라도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가 그때 하고 있던 연구로는 그 근처의 근처에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실험은 또 오죽 안 되야지! 좌절감에 빠져 연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었던 시절이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사람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보면서 “왜 나는 저만큼 못 뛰는 거야!”라며 성질내는 꼴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연구가 재밌긴 한데…”라며 작게 되뇌었다. ‘그러게, 연구가 참 재밌긴 한데, 이렇게 일할 곳 없는 시대에 우리가 계속 연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울컥 치밀었지만 꾹 참고 이야기를 마저 보탰다.
그러다 얼마 뒤에 잠 푹 자고 컨디션을 좀 되찾고 나니, 아무리 그래도 취미로 과학하는 것보다는 전문가로서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게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항상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서 문제다. 그래서 또 신나서 선생님께 아무래도 연구를 계속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래 잘 생각했다. 회사 가서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교수가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 하시는 거다. 에헤이, 하여간 우리 선생님, 눈치 좋은 분이 이럴 때는 눈치가 없으시다니까. “아니, 선생님 뭔 소리예요. 돈 벌려고 회사 가려고 했던 게 아니라, 학계에 남으면 오히려 연구를 못 할 것 같아서 취직하려고 했던 거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쏘아붙였더니 선생님은 갑자기 시무룩해지셨는데, 아무래도 너무 세게 말했던 것 같다. 죄송. 천방지축이었던 나조차도 이제는 조금은 사회화가 돼서, 진짜 하고 싶던 말은 꺼내지 않았다. ‘누구는 교수 좋은 직업인 거 모르나? 하고 싶으면 누구나 그냥 다 교수되는 줄 알겠어.’ 선생님이 이 부분은 안 읽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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