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찾아읽게 되었다. 제목이 말 그대로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듯 해서. 저자는 어쩌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박사과정까지 끝내고 현지에서 취직까지 이어졌다. 완전히 같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학에 대학원에... 뭔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을 상상하기 이전에 일단 제목이 너무 임팩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책도 잘 안읽히고 해서, 제목에 꽂힌김에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심하게 공감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공감이 너무 심하게되어서 대충 읽을 수가 없었다. 타지의 대학원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부분은 심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 같았다. 물론 저자는 미국이었고 나는 일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내얘기를 하는 것 같은 이기분. 간결하고 담담하게 쓰여져있지만, 너무 이해되고 함께 회상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전혀 슬프지 않은 부분을 읽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의 그시절도 막 생각나고 그래서...
물론 진지함도 꽤 잘 녹아있다. 혹여 대학원생이나 유학생이 이 글을 읽는다면 위로가 될만한 이야기도 그리고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도 참 많이 있다고 생각됐다. 그것도 참 따뜻하게 써놓았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이들이 늘 부럽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어쩜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하고. 여전히 공부중이거나, 혹은 논문을 쓰고있거나, 연구직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강력 추천해주고 싶다.
유학 생활은 그렇게 나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자존심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나의 어리숙한 면은 슬그머니 감춘 채 남들 눈에 똑똑해 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똑똑한 척’도 여유와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임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쏟아지는 과제를 서툰 영어로 매일 해내야 하는 상황에선 그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전공 교과서 읽고 논문 읽을 때는 죽으라고 안 붙던 속도가 쭉쭉 붙는다. 아무리 아껴 읽어도 한국에서 가져온 몇 권의 책은 금세 동이 나버리고 만다.
그리워할 때만큼 절실히 사랑하는 때가 있을까. 외로워할 때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테두리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닐까. 유학은 한국에는 없고 미국에는 있는 어떤 걸 배우러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오히려 유학 공부의 큰 부분은, 미국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 있는 것 같다.
그 무렵엔 돈뿐만 아니라 시간을 쓰는 것에서도 여유가 없었다.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격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남을 도와주는 데 인색해졌고, 사정이 있어 약속을 늦추거나 취소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모질게 굴었다. 그렇게 유난을 떨며 아낀 시간에 각잡고 앉아 논문을 쓰려 하면, 그게 또 맘대로 되질 않았다. 마음은 바쁜데 책상 앞에 앉으면 딴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모순적인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때 알았다. 건강관리든 효도든 연애든 ‘공부가 끝날 때’까지 무턱대고 미뤄둘 수는 없다는걸. 공부는 아마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을 해야 할 테니까, 공부를 하면서 삶의 기쁨도 누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밝기와 온기를 지키려면 멀리 있을수록 더 뜨겁고 강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전할 수 있구나.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는 것만큼은 좀 유난스러울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먼 거리를 넘어서 가족과 친구에게 닿았을 때, 내 마음도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졌으면.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오직 도움이 되는 것은 저녁에 연구실에 남아 이것저것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 분석해보면서 혼자 공부했던 시간이다. “이건 안 되네”, “근데 저것도 안 되네”, “아! 이제 어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보냈던 그 시간들. 논문의 최종 원고에는 들어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고민과 시도들은 내 안의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는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일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매일 하는 것. 큰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그보다 좋은 방법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박사 학위는 증명서나 자격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알람 장치 같았다. 앞으로의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알람 장치. 학위를 하는 동안 보고 배웠던 것처럼. 끊임없이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경계선에 스스로를 올려놓을 것. 스스로의 테두리를 계속 바깥으로 밀면서 더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과 지식을 끌어안을 것. 어쩌다 길어진 가방끈이지만, 그 가방끈에 부끄럽지 않도록 일생 노력할 것.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박사’라는 호칭과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중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처럼 ‘실패한다는 건 정확하다는 의미’다. 거기서부터가 비로소 진짜 준비의 시작이라는 걸, 이렇게 멀리 돌아와서 배운다.
내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몰두한 시간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내 자존감이 된다.
삶이 불확실하고 생소하게 느껴질 때 가끔 이 대화가 떠오른다. 생소한 문제를 마주하는 때야말로 새로운 발견의 기회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또 멋지게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더라도 계속해서 답안지를 제출해내는 것이 진짜 시험이란 것을 명심할 때. 절망이 가시고 희망이 찾아온다.
언젠가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커리어에서 어느 정도 위치 이상으로 가면, 인격도 실력이 되는 날이 온단다. 그러니 남을 짓밟아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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