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이진송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 Mashimaro | 2020. 11. 2. 22:45







요 몇년간 페미니즘 관련서적을 참 많이 읽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기적으로 찾아읽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책은 첫인상부터 무거워보이지 않았고, 에세이같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찾아읽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름 맞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쉽게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고나 할까?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 중에 쉽고 잘 읽히는 책으로 손에 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첫 설정 자체가, 저자가 여동생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이 책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있지 않나 싶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더 술술 읽히는 것도 같다. 몇몇 페미니즘 관련서적은 좀 무겁거나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이 있고, 오히려 여성들이 반감(?)을 갖는 책들도 간혹 보이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아마도 꽤나 부담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와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노래, 드라마, 영화,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소재로 예를 들면서 설명했던 것이 매우 주효했던 것 같다.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어떠한 부분이 왜곡되었고 어떠한 부분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착된 이미지가 되어버렸는지 등등.. 평소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예들을 통해서 한번쯤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여성들 조차도 본인의 불리함을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라든지, 오히려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표현들을 사용하던 부분이라든지... 알게 모르게 지나쳐왔던 부분들을 조금씩 짚어주는 것 같아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페미니즘 입문서와 같은 느낌. 그리고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직접 말했던 것 같이, 함께 소소하게 수다떨 수 있었던 느낌이 참 좋았던 것 같다. 


페미니즘은 남녀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장치도 아니고, 또 옛 문화와 관습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 위한 장치도 아니다. 요즘 페미니즘 관련서적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페미니즘 자체가 사회속에서 이런 이미지로 박혀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느낀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무겁고 어려운 내용부터 찾기보다는, 이런 생활밀착형(?)의 페미니즘 서적도 꽤나 괜찮지 않나 싶다. 




그렇게 뛰어나다면 연애 정도는 못해도 뭐 어떤가 싶지만, 연애에 서툴거나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여자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진다. 여자가 연애하지 않는 것은 그 여자가 덜 매력적이거나, 눈이 너무 높거나, 너무 잘난 척하거나, 기타 등등 어쨌든 여자 잘못이다.


할 자유와 하지 않을 자유가 병행되지 않는 선택지는 강요에 불과하다. 그것이 어떤 좋은 가치와 세계관을 지향하든 결국 폭력이다.


누군가는 연애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연애에 관심이 적거나,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연애와 결혼은 각자의 삶을 조립하는 여러 블록 중 하나에 불과하고 그 무게나 중요도나 형상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그 블록이 없다고 해서 불완전한 존재로 판단하는 것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연애뿐인 블록을 조립한다고 해서 그것을 무너뜨리거나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만든 블록으로 ‘잘’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더 안전하고 평등한 지형 위에서 쌓아올릴 수 있도록 함께 땅을 고를 것이다.


여성은 출산 기계가 아니고,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임신과 출산을 할 필요는 없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혹은 심지어 불임의 몸이어도 나는 여성이고 나의 출산 능력은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1986년, 1988년, 1990년은 각각 범띠, 용띠, 백말띠라 여자가 드셀 것이라는 편견이 합쳐져 최악의 성비를 기록했다. 여아가 100명 태어날 때 자연성비가 105인 남아가 해당 년도에 111.7명, 113.2명, 116.5명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그만큼의 여아와 산모가 젠더사이드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임신중절을 강요받은 여성들보다 불균형한 성비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못하거나, 여자 짝꿍이 없는 것을 걱정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명제는 너무 뻔하고 진부하다. 그리고 이 도덕적 가르침은 여성에게만 향한다. 어떤 규범이 정체성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적용된다면 차별이다.


‘미녀와 야수’의 예시는 이제 그만 좀 유통하고 부추겼으면 좋겠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발견되어 사랑 받으려고 기다리는 산삼이 아니다. 타인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면을 발견하고 사랑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군다나 여성은 굳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기를 필요도, 모든 조건을 제치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사랑할 의무도 없다. 혹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해도 다른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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