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책은 이 책이 두번째인 것 같다. 이전에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나서 너무 좋아서, 이후에 나왔던 책인 《내게 무해한 사람》도 진작에 구입을 했고... 미적미적 읽지 않고 있었던 동안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 심지어 장편소설. 이 책 역시 구입해두고 묵혀두고 있다가, 친구가 읽은 것을 보고는 생각나서 먼저 읽게 되었다. 사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너무 좋았던지라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가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번 작품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을 통해 느꼈던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도 느꼈지만, 단편이 좋았던 작가들이 긴 호흡의 장편도 참 잘 끌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어쩌면 여성들이 읽었을 때에 더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지연와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로 이어지는 한 가정의 여성들을 통해서 스토리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도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아우르는 대서사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또 겪어왔던 일상의 이야기들이 녹아있어서 나의 엄마를 생각하게 하고, 나의 할머니, 또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게 된다. 가까우면서도 먼 이야기들을 꽤나 친근감 있게 그려낸다고나 할까? 아마 지연이 느꼈던 감정도 그러했을 것 같다.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의 삶들을 통해서 엄마와 부딪치고 이해하가는 과정들을 겪고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덤덤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심리적인 묘사가 꽤 섬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티안나게 툭툭 건드려주는 세심함과 따뜻함이 아마 최은영작가를 좋아하게 하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할 당시 꽤나 힘든 시간을 지냈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아마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있다. 단편도 좋았는데 장편도 좋았다. 어느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다 좋은 것 같다. 작가님이 더 힘들지 않고 다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내가 집에 가는 길에 서럽다, 서럽다 하니 삼천이 너가 그랬지. 서럽다는 기 무슨 말이간. 슬프믄 슬프구 화가 나믄 화가 나지, 서럽다는 기 뭐야. 나 기 말 싫구만. 너레 화가 나믄 화가 난다구 말을 하라요. 나한테 기런 말두 못하믄 내가 너이 동문가. 그래서 마당에 앉아 내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럽다는 말이 거짓 같았어. 서럽긴 뭐가 서럽나. 화가 나지. 삼천이 너가 그러지 않았어. 섧다, 섧다 하면서 화도 한 번 내보지 못하구 속병 드는 거 아니라고. 그 말을 나 생각해.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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