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겠다 읽겠다 하고 묵혀두었던게 정말 얼마동안이었던가... 사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못했던 것은 전자책으로 출간되지 않았던 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국에 갔을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해 두었던 책이었는데, 그걸 이제서야 드디어 읽게 되었다. 워낙에 두껍기도 했고, 또 아예 스캔하기 위해 분해해 뒀던 터라, 하루에 한 챕터씩 바인딩해서 읽었던 것이 그나마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게 아닐까 싶다.
사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대변동》을 먼저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이지만, 이 책을 읽을 당시에도 꽤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솔직히 겁없이 덤볐던 것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 《총, 균, 쇠》를 읽으면서 제대로 느꼈지만, 나는 아마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글쓰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듯 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피엔스》와 참 많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사실 스타일은 꽤 다름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부터 쭉 훑어가는 통사적인 전개덕분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 작가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긴 한 것 같다. 어느쪽이 더 좋냐 한다면 난 역시나 재레드 다이아몬드 쪽이다.
사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는 사실 욱하고 올라오는 부분들도 꽤 있었다. 특히 내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자꾸 팩트체크를 하게 되고 또 자꾸 비판적인 잣대를 들여다대고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유발 하라리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체를 활용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에 비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약간 학술서에 가까운 진행을 한다. 문제제기를 하고 많은 실험과 자료로 검증데이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다고 느꼈는데, 사실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고 심플하지만 그에 대한 사례들 그리고 자료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엿보인다. 그러다보니 대중적인 글쓰기의 입장으로 보면 유발 하라리가 아무래도 더 인기작가로서에 범주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두 작가 모두 공통된 부분도 있었는데 그건 제목을 붙이는 작명센스. 《사피엔스》나 《총, 균, 쇠》나 어쩜 그렇게 제목을 기똥차게 지었는지. 꼭 한번 집어들거나 찾아보게 할 정도로 제목을 잘 지었다. 사실 《총, 균, 쇠》에서 정말 '총'과 '균'과 '쇠'가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솔직히 책 속에서 가장 강조하는 포인트는 작물화와 가축화가 아니었을까? 결국 정주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환경과 조건들을 주제로 하고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고고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데,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루는 연구결과 중 고고학분야의 성과들을 많이 채택해서 제시해주었던 것도 내가 이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지도 이미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사실 이후 갱신된 데이터들도 꽤 있긴 하다. 내 전공분야인 선사고고학분야에도 상당한 데이터의 축적이 있었고, 특히 고인류학 분야에 있어서는 최근 게놈, 유전자연구 등의 성과가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 되고 있어서 수정을 가하고 싶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큰 틀에 있어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논지가 크게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이러한 방대한 분야의 데이터를 집적해서 이러한 형태의 단행본으로 엮어낸 저자가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식량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느냐 말았느냐, 또 되었다면 그 시기는 언제였는가 하는 지리적 변동은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전 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은 수렵 채집민들보다 잘 산다고 말하기 어렵다. 시간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들을 보더라도 하루 중 노동 시간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오히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또 하나의 오해는 유랑형의 수렵 채집민과 정주형의 식량 생산자가 명확히 구별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구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아메리카 서북부의 태평양 연얀과 같은 일부 풍요로운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정주는 했어도 식량 생산자가 되지는 않았다.
두 번째 요인은, 야생 동물이 감소하면서 수렵 채집 생활의 보상이 줄어들었던 것과는 반대로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이 증가하면서 식물의 작물화에 따르는 보상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각 대륙에 따라 달랐던 축의 방향은 식량 생산의 확산뿐만 아니라 기타 기술이나 발명품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대한 장군들을 칭송하는 전쟁의 역사는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한 가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즉, 과거의 전쟁에서는 반드시 가장 훌륭한 장군이나 무기를 가졌던 군대가 승리하지는 않았으며 가장 지독한 병원균을 적에게 퍼뜨리는 군대가 승리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고대 문자의 주된 기능은 '타인의 예속화를 돕는 일'이었던 것이다. 비전문가들이 문자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즉 문자 체계가 점점 간소해지고 표현력도 늘어난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밖의 사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인류에게서 직선 거리는 결코 고립성을 측정하는 적절한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창의성이 아니라 혁신에 대한 사회 전체의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대륙의 사회는 항시 혁신적이었고 또 어떤 대륙의 사회는 보수적이었다는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 어떤 대륙이든 또 어떤 시대든 간에 거기에는 혁신적인 사회도 있었고 보수적인 사회도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혁신에 대한 수용성은 한 지역 내에서도 시대에 따라 변동한다.
사람들의 언어는 바뀌지만 유전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은 뉴기니 북해안과 인근 섬들에서 침입자인 오스트로네시안인들과 원래부터 있던 뉴기니인들이 수천 년 동안 교역 및 결혼을 통하여 유전자와 언어를 주고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같은 장기간의 접촉에서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 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유전자가 아니라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였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도표를 보고 틀림없이 경악할 것이다. 실제의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일견 정확해 보이는 몇 개의 연대로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연대는 하나의 연속 선상에서 몇몇 자의적인 시점들을 선택해 놓았을 뿐이다. 예를 들어 어느 고고학자가 발견한 최초의 금속기 연대보다는 모든 도구 중에서 상당량이 금속으로 만들어졌던 시기가 더 중요하다.
지금쯤 이렇게 항의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자의적으로 '인종'을 분류하여 사람들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지 말라! 그러나 나도 이른바 주요 인종이라는 이 각각의 범주 속에 사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줄루족, 소말리족, 이보족 등 서로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두 '흑인'이라는 한 범주 속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그들의 차이점을 무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틈에서 이 같은 환경의 차이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당장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딱지가 붙는데, 그러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명칭 속에는 어떤 불쾌감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가령 인간의 창의성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냐, 우리들 인간이 기후, 동물군, 식물군 따위를 통하여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걱정들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창의성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오늘날까지도 수백만 년 전의 선조들처럼 석기로 고기를 썰어 먹어야 했을 것이다. 모든 인간 사회에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환경과 무관하게 작용한 문화적 요인들의 의의를 확인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그 지역만의 사소하고 일시적인 이유로 인해 별로 중요치 않은 어떤 문화적 요소가 발생했다가 그대로 굳어짐으로써 그곳 사회로 하여금 여러 가지 더 중요한 문화적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들이 '단순히' 어쩌다가 그 시기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들은 실제로 얼마만큼이나 상황을 변화시켰을까? 다음은 이 문제에 대한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의 극단적인 견해이다.
"보편적인 역사,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업적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여기서 활동했던 '거인들의 역사'다."
이처럼 역사학자가 인간 사회의 역사에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은 대체로 천문학자, 기후학자, 생태학자, 진화생물학자,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등이 직면하는 어려움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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