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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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온다 리쿠 『꿀벌과 천둥』

| Mashimaro | 2018. 6. 6. 20:46



일본어 리뷰 [Japanese Review]

恩田陸 『蜜蜂と遠雷』




6월의 첫 완독책은 작년에 나를 열광시켰던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 되었다. 이 책은 이미 작년에 원서《蜜蜂と遠雷》로 완독한 책이다. 양도 무지하게 많았던 데다가, 그런 책을 원서로 읽으려니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었다.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는 완독하고 싶어서, 막판에 정말 열심히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어판을 구입하고나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이 이렇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무래도 원서로 읽을때는 거의 정독을 하다시피 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서를 읽을때와 한국어판을 읽었을 때에 느낌이 살짝 달라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물론 내용이 같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오는 재미와 감동은 같지만, 역시나 외국어로 읽는 책과 모국어로 읽는 책이라는 점, 그리고 원작자의 언어로 쓴 책과 번역된 책을 읽는 느낌은 살짝 달랐다. 확실히 한국어판을 읽다보니, 이 책이 가지는 스피드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일본어로 읽었을 때에도 그 곡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준 덕분에 소설속에 들어가서 함께 호흡하며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 한국어로 읽다보니 그 속도감이 더 제대로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어로 읽었을 때에 더 집중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거의 정독을 했던지라 한 문장, 한 단어를 곱씹어가며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어로 이 책을 읽었을때 가장 공감하고 마음이 갔던 캐릭터는 아카시였다. 아무래도 천재들 사이에 끼어있는 범인(凡人)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가고 공감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한국어판으로 읽었을 때에는 아야에게 더 마음이 갔다. 왜지? 단순히 두번째 읽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언어에 따른 차이였다고 한다면 이건 꽤나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각 언어마다 감정적으로 울리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한국어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작품이 이렇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던 것 같다.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네이티브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일본어 원서를 읽는 속도도 나름 이전보다 빨라진 듯하여, 주기적으로 좋은 작품들은 원서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주할 수 있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너새니얼은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있다고 생각한다.

까다로는 것은 '연주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 사람 중에도 '연주하는' 재능이 숨어 있을 때가 있고, '연주하는' 일에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헛돌아 실속 없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둘 사이의 골은 깊지만 거기에 골이 있다는 것만 알면 우연한 계기를 통해 골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니, 콘서트 피아니스트를 그만두었을 때는 엄마 탓이고, 다시 시작하는 건 너보다 어린 남자애 때문이니?

그럼 그 애가 네 기대에 맞게 연주하지 못했을 때는 어쩔 셈이야? 실망스럽거나 기대에 어긋나면 역시 그만둘 거야?

거울 속의 소녀가 비웃고 있다.

결국 남 탓이구나. 남한테만 의지하는구나. 어차피 너는 진짜 음악가가 아니야. 마사루를 봐. 가나데도, 다른 참가자들도.

그들은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가겠노라 결심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은 이미 음악가야. 하지만 너는 음악가가 아니야.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음악가였던 적이 있었어? 타인에게 운명을 맡긴 네게 앞으로 음악에 인생을 바칠 각오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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