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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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恩田陸 『蜜蜂と遠雷』 (꿀벌과 천둥)

| Mashimaro | 2017. 7. 29. 01:37




일본어 리뷰 [Japanese Review]

恩田陸 『蜜蜂と遠雷』




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일본어 원서인데다가, 페이지수가 무려 507페이지에, 편집이 2단편집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비슷한 페이지수의 다른 책들보다 내용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가, 킨들로 이 책을 읽었는데... 1시간가량을 열심히 읽어도 1~2%정도밖에 진행이 안되었다고 나온다. 아무튼 그 길고도 긴 대장정을 끝낸 느낌이다. 그런데 그건 비단 내가 책을 읽는 과정 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책을 덮는 순간, 주인공들과 함께 콩쿨이라는 대장정을 끝낸 느낌이 든다. 


주인공은 아마도 4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스토리는 이 주인공 4명의 성장스토리라고 할까? 사실 이러한 음악, 심지어 콩쿨을 소재로 한 내용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천재가 존재한다. 이는 소설의 공식이라기보다 실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러하다. 아마 클래식 영역에서야말로 그러한 부분이 강조되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주인공들 중에서도 3명은 이미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더 감정이 이입되었던 것은 아카시였던 것 같다. 범인의 눈으로 천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감정을 나눠주기도 하고, 또 천재들이 살아남는 세계에 몸담그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평범한 노력파이기에, 그 입장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이야기나 생각들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재미와 클라이막스는 천재들의 몫인 것 같다. 다들 여러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 또한 하나의 음악을 표현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플러스 알파로 내가 경험하지 못할 것 같은 굉장히 멋진 연주를 보여주며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느낌이다. 사실 콩쿨에서 연주하는 곡들을 잘 모른다면 머리속에 이미지화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도 디테일하게 묘사한 연주장면을 통해서, 곡이 품고있는 분위기나 상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어떻게 읽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작가의 필력이나 내공이 나오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결말은 생각보다 무난했던듯. 반전이 있는 느낌도 아니고, 또 실망스러운 느낌도 아닌 것 같다.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었고, 어찌보면 이게 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결말은 어찌되어도 별로 상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들과 함께 콩쿨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었기에 그 과정의 시간들을 함께 함으로써 충분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러브라인은... 음... 이건 뭐,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ㅎㅎ 어쩌면 이것도 예상대로였을지도...^^


아무튼, 이렇게 분량이 많은 책을 원서로 완독하다니, 굉장히 뿌듯하다. 31일에 한국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라, 그 전까지는 다 읽고싶다고 이전 포스팅에도 썼었는데, 그 작은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아서 이것 또한 뿌듯하다. (하지만, 덕분에 7월달은 완독한 책이 너무 적다..ㅠㅠ) 또, 읽으면서 오랜만에 일본어 공부도 엄청 하게된 책이기도 하고.. 꽤 오래 기억에 남게 될 책이 될 것 같다. 





世界中、どこに行っても、音楽は通じる。言葉の壁がない。感動を共有することができる。あたしたちは言葉の壁があるから、ミュージシャンは本当に羨ましい。


俺はいつも不思議に思っていた--孤高の音楽家だけが正しいのか?音楽のみに生きる者だけが尊敬に値するのか?と。

生活者の音楽は、音楽だけを生業とする者より劣るのだろうか、と。


嬉しいよ。嬉しいなあ。僕は、昔から明石君のピアノのファンだからね。

ピアノは天才少年や天才少女のためだけのものじゃないんだから。

むろん、自分が天才少年でないことは知っていた。けれど、やはり花田にもそうではないと思われていたことには内心ちょっとだけ傷ついたが、まあこの歳でコンクールに記念受験のごとく参加するくらいなんだから、それがまっとうな評価だろう。

それより、花田も明石と似たようなことを考えていたのだと知り、勇気づけられた思いだった。

ピアノは天才少年や天才少女のためだけのものじゃないんだから。


音楽を生活の中で楽しめる、まっとうな耳をもっている人は、祖母のように、普通のところにいるのだ。演奏者もまた、普通のところにいてよいのではないだろうか。


通常、難曲を弾くコンテスタントは「これから難しいのやります」と身構える。プロでさえそうだ。それはますます曲を難しくするし、聴いている側にも「難しい曲」になってしまうのである。

しかし、目の前の少年はそんなことなど全く知らないように見えた。面白い曲だと思い、面白く弾いているだけ。


モノが違う。

高島明石の頭に浮かんだのはそんな言葉だった。

ああ、そうか、これはコンクールだったんだ、これまでうまいだの下手だの言っていたのは、しょせんアマチュアの集まりでの評価に過ぎなかったんだ。

そんな感想が浮かんできてしまう。

見よ。今、舞台の上にいるのは、音楽を生業とすることを生まれながらに定められた、プロフェッショナルなのだ。


また漠然とした不安が込み上げてくる。「世間」が押し寄せてくるコンクール。あれだけ素晴らしい、独創的な演奏が認められないのなら、才能とはいったい何なのだろう。


確かに、曲の仕組みや当時の背景を知ることは重要だ。どんな音で演奏され、どんなふうに聞こえたか、知ることは大事だ。けれど、当時の響きが、作曲家が聴きたかった響きだったのかどうかは誰にも分からない。現想とする音で聴けたのかどうかも分からない。

楽器の音色も、使いこまれたら変わる。時代が変わればまた変わる。演奏するほうの意識もかつてと同じではないだろう。

音楽は、常に「現在」でなければならない。博物館に収められているものではなく、「現在」を共に「生きる」ものでなければ意味がないのだ。綺麗な化石を掘り出して満足しているだけでは、ただの標本だからだ。


「おまえさんたちに、あの子が採点できるのかい?」


「ユウジがあの子を送りこんだのは確信犯だ。おまえさんたちや、俺たちに対する挑戦なんだ。試されてるのは俺たちのほうさ」


よく言われることだが、審査員は審査するほうでありながら、審査されている。審査することによって、その人の音楽性や音楽に対する姿勢を露呈してしまうのだ。


マサルはそんな奇妙な確信があった。

今の僕にできると許されていることは、必ずできる。逆に言えば、今できないことは今の僕には許されていないのだ。


凄い情報量だ。

やはり亜夜のラフマニノフに圧倒されつつも、明石はそんなことを考えていた。

プロとアマの音の違いは、そこに含まれる情報量の差だ。


人の苦労は比べられない。それは、亜夜のそばにいて知っていたはずだった。

天才と呼ばれる人にはその人なりの悩みや苦労もある。天才少女からの転落、という立場を亜夜が理解してい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ずいぶん心無いことも言われたし、叩かれた。突如引退した時の凄い騒ぎは、今も忘れてはいない。


ここまで残った十二人のコンテスタントの国籍の内訳は次の通りである。

アメリカ一、ロシア二、ウクライナ一、中国一、韓国四、フランス一、日本二。

地理的条件からいって日本のコンクールの参加者にアジア系が多いのは当然としても、だいたいクラシックにおける現在の世界の音楽界の勢いを反映しているな、と三枝子は思った。


人間の呼吸は「吸って、吐く」のではなく、「吐いて、吸う」のが基本なのだ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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