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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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Mashimaro | 2017. 8. 13. 19:14






이 책의 제목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 사실 군함도는 이 책의 입구에 불과하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강제동원에 관한 역사이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문화재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있고, 또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창 이슈가 되었던 군함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궁금함에서였다. 작년에 발간된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라는 소설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소설보다는 사실로 접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첫 챕터에서는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와 강제징용에 관한 이야기들로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일부분에 불과했고, 다음장으로 넘어가면서 일본열도를 종단하며 강제징용의 기록들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통해서 강제징용의 역사들 훑고, 마지막 장에서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많은 소송들과 노력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한 실무적인 부분에 약간은 발을 담그고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과정이 정말 생생하게 다가왔었고, 합의문제와 유네스코의 고민 등이 굉장히 실질적으로 다가왔었다. 다음 장들을 읽으며, 실제로 우리학과에서 매년 참여했었던 홋카이도의 아사지노 비행장 유해발굴현장 등의 이야기들도 나오면서 정말 남일같지 않음을 느꼈다. 읽는 내내,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이야기들이 이미 식민지시대 역사 속에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가장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사실 굉장히 인상에 남는 부분은 일본인들과 일본 시민단체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사람들 보다 먼저 발벗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다. 실제로 내가 2008년에 단기선교로 오끼나와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만나뵈었던 할아버지 할머니 10여분께서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백발이 성성하신 그분들께서,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새파랗게 젊은 우리들에게 무릎을 꿇으셨던 것이다.  그 당시 너무 놀라고 몸둘바를 몰랐던 기억이 난다. 실제 일본에 살고있는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일본분들이 참 많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도 굉장히 자극적이고 또 실제로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한쪽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들을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표현해주시는 분들이 꽤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 주위의 그런 분들에게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나서 각각의 감상이나 반응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관심조차 깊게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든, 부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든.. 그것에 앞서서, 무지한 채로 생각없이 떠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고 방치해두었던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다. 





유네스코는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인 '세계대전을 반성하고 영속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를 강화할 목적'으로 1945년 11월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유네스코 헌장이 밝힌 대로 인류의 역사는 평화로운 상태로만 지속되지 않았다.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끊임없이 교육하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기초하여 인류가 범한 '부정적 역사'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해왔다. 그 대표적인 세계유산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 Auschwitz Birkenau(1979년 등재)이다. 이번 39차 총회 공식 포스터에 소개된 독일 에센 Essen의 졸페라인 Zollverein(2001년 등재) 탄광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은 이 탄광을 '라인 강의 기적'을 가져온 산업유산으로 등재했지만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나치에 의해 유대인 포로들이 강제노동을 했던 사실과 6,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된 어두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_강제징용의 현장, 세계유산이 되다



그러면 '합사제'라는 건 도대체 무슨 표시일까? 그 의문을 풀어준 것은 재판지원회 활동을 하던 일본인이었다. "이희자 씨 아버지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네요." 이 말을 듣고 이희자 대표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치미는 울분에 하얗게 밤을 지샜다. 일본이 조선인 군인・군속 희생자들을 자국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전쟁신으로 야스쿠니에 함께 모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A급 전범들과 함께 말이다. _일본군으로 죽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재판장님! 오늘 이 법정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왜 아버지를 야스쿠니에 합사했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따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장 야스쿠니에서 제 아버지 이름을 빼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뿐입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사람이지 일본사람이 아닙니다. '천황'을 위해 죽어간 사람이 아닙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어간 것도 억울한데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 사실을 알려주지도, 합사 의향을 묻지도 않았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도 식민지 시대입니까? 제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에서 당장 뺄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구합니다." _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 한국의 유족들



이후 재판에서 야스쿠니신사 측은 "교리에 따라 합사한 뒤에는 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영새부에서 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법원은 "피해자들의 불쾌감은 이해하지만,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라고 보기 어렵다"거나 "야스쿠니신사가 희상자들을 신으로 모시는 행위는 종교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김희종 씨는 야스쿠니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2016년 5월 16일 별세했다. _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 한국인 유족들



아이들은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 만행과 식민 지배, 피해자가 외면 받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 배운다.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문제를 성찰할 틈도 없이 자극적인 결론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본이 우경화하고 비이성적으로 변한다고 해서 우리마저 더 자극적으로 적대감을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문제는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_일제 강제동원 사건 17년째 소송 중



1980~90년대 우리가 아직 민주화와 경제 문제로 여력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이름 모를 일본 시민들은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도쿄에 있는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도야마 후지코시 공장 정문에서,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아베 정권과 전범기업들은 식민 지배 및 강제동원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진정한 사과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권과 가해 기업의 반인륜적인 모습이 일본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_일제 강제동원 사건 17년째 소송 중



얼마 전 일본 지원단체의 총회에 인사말을 보냈다. '지난 세기 일본의 과거는 한국의 과거였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미래는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암울한 시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서서 싸우는 여러분들의 고귀한 마음과 활동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은 한국의 과거사 청산과 연결되어 있고 일본의 우경화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일본'이라는 규정하기 어려운 허상 전체를 적으로 둘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시민들과 연대해야 할 때이다. _일제 강제동원 사건 17년째 소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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