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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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서수민, 조선희 『촌년들의 성공기』

| Mashimaro | 2017. 8. 14. 00:38






서수민과 조선희. 사실 어찌보면 이름만 아는 사람들이었다. 서수민은 개그콘서트 PD의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고, 조선희는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정도랄까. 그래도 왠지 이 둘이 썼다는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읽고싶어지더라. 근데 또 그게 나한테는 맞았나보다. 쎈언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 두사람의 글이 참 많이 와닿았다. 대학때 만나 25년 절친이라는 이 두사람이 주고받는 듯한 말투로 써내려간 이 책을 보면서 쎈언니처럼 보이고 싶었서 아등바등했던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서수민은 KBS에서 11년만에 뽑은 여자PD였고, 조선희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사진작가이다. 두 업계 모두 남자들이 메인으로 활약하던 시기에 일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러한 면에서 더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고고학을 시작했을 때에 여자들이 정말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같은 세부전공을 하던 두 언니는 더 각별히 챙겨주었고, 또 더 각별히 엄격하게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난다. 책 속에서 두 사람이 겪었던 경험들이 오버랩되면서 굉장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남자처럼 행동하고 울지않고 쎈 척 하는 것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시행착오를, 이 책을 쓴 두 선배가 그대로 이미 경험했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을 자기계발서라고 해야하는지, 에세이라고 해야하는지 당췌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뭐 장르가 중요한가? 정말 털털하게 써 내려간 두 사람의 글이 굉장히 즐겁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름 유명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대단한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간 느낌이 들기보다는 친한 언니가 신세한탄을 하면서 같이 수다떠는 느낌? 아무래도 난 이런 스타일이 맞나부다.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다. 군더더기가 없고 날것이어서 좋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역시 산전수전 겪어본 선배 언니들의 말은 피가되고 살이 된다는 생각이다.   





본래의 나와 남들에게 보여주는 나. 누구나 이런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갈 거야. 하나의 자아는 커리어를 추구하고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강하게 몰고 간다면, 또 다른 자아는 일상의 소중함을 추구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요구하지. 두 자아가 모두 다 소중하고 잘 돌봐야 할 대상인데, 현실은 자꾸만 한쪽 자아, 즉 보여주는 자아에만 치중하도록 우리를 다그쳐.


이런 캐릭터는 안티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골수팬을 만들기도 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어. 사랑해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그런데 떠난 사람은 기회를 가질 수 없어. 오직 버텨서 남은 사람에게만 기회가 오는 법이지.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버티는 것도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할 거야. 버틸 수 있을 만큼 모아둔 돈이나 부모님의 지원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끝까지 버텨내는 사람은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야. 우리 같은 촌년들이 훨씬 잘 버텨.


타협과 전략으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이제 방송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렸어. 선택의 시점에 나는 순수하지 않지만, 지금은 순수해. 나도 돌아갈 데가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이제는 내가 비겁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 뭘 선택하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성실히 걸어간다면 그걸로 된 거야. 정말 후회할 일은 비겁했다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아닐까?


어떻게 이기냐고 물었더니 답이 명쾌했어.

"나는 복서였기 때문에 상대를 때리기만 하려고 팔을 뻗지 않아요. 나도 맞을 각오로 팔을 뻗지요. 맞지 않고 이길 수는 없어요. 맞지 않고 때리려고만 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쉬운 상대지요."


나는 나의 용기에 감사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무모함에 감사해. 사진에 관한 한 나는 머리를 굴린 적이 없어.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해.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 잔인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보다는 덜 잔인하거든. 앞의 말이 판타지라면 뒤의 말은 현실이지. 판타지와 현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판타지를 선택하겠어.


그 선배가 또 그랬어. 너는 왜 촬영이나 녹화 끝나고 선배나 다른 사람들한테 수고하셨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문자 한 통이 없냐고. 남자 PD들은 잘 보내는데 여자 PD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연말연시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자도 남자들이 더 많이 한대. 아니, 왜 그런 진심도 아닌 것에 사람을 평가하느냐고 버럭 화를 냈지만, "그럼 너는 일하면서 어떻게 너의 진심을 보여줄 건데?"라는 선배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어.


이럴 때는 조심스럽게 나 혼자 다짐하지. 아직은 쉽게 만족하지 말자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거라고.


여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실수하고 고쳐가면서 성장하는 것이지.


그때 심한 공격을 당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리더는 조직의 위기가 닥쳤을 때 앞에 나서서 눈과 비를 다 맞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동시에 그런 사람이 되기에는 내 그릇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네가 <개그콘서트>에서 한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야. 너는 개그맨들이 신나서 일할 판을 만들고, 열정을 불태우도록 하고, 아낌없이 격려했지. 그들이 비난받을 때 앞에 나서서 화살을 맞았고. 그것만으로도 너는 리더야. 리더는 강한 사람이 아니야. 강하지 않음에도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지. 


결핍은 그런 것 같아. 없으면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겠지만, 없었다면 오히려 아쉬웠을 그 무엇.


다 부질없구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며 살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겠구나. 아무도 나를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저 많이 아쉬워하는구나, 그동안 너무 많이 힘들었구나, 앞으로는 너무 싸우지 말고 즐겁게 일해라. 그런 따뜻한 말들을 해줄 뿐이었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여자 후배들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슬플 때, 힘들 때, 속상할 때는 애써 숨기지 말고 그냥 울라고. 여자들이 좀 운다고 밑질 것 없어. 남자들은 좀 당황할 뿐 여자가 울었다고 무시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아. 그러니 감정을 꽁꽁 싸매지 말고 흘려보내며 살아야 해. 실컷 울고 후련해지는 거야.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열하게 일하는 거야.


여자라서 다른 점, 여자라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차별받았다며 억울해하는 것보다 나아.


우리 사회에 남녀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차별이란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여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차별 카드를 꺼내든다면 오히려 진짜 차별받은 여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 여자라고 움츠릴 필요도,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어. 세상은 남자 편도 아니고 여자 편도 아니고 그저 '내' 편이야. 내가 노력하는 만큼 원하는 것을 얻고 내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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