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있는 세계문학단편선 중, 그나마 진도가 많이 나가있던 4권, 대실 해밋 편을 드디어 다 읽었다. 사실 난 추리소설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데, 대실 해밋의 단편선을 읽으면서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대실 해밋 뿐만이 아니라 매그레 시리즈도 그렇고, 뤼팽 시리즈도 그렇고, 셜록홈즈는 아직 제대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단 그렇게까지 무섭지만 않으면, 추리소설도 오케이라는 생각이.. 대실 해밋의 단편선은 마치 잭 리처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도 드는데, 그의 작품에 계속 등장하는 주인공, 즉 콘티넨탈 탐정 사무소의 익명의 탐정은 마치 잭 리처처럼 꽤나 모든 상황을 잘 통제하고 만능 맥가이버와 같은 활약상을 보여준다. 아마도 내가 겁없이 이 작품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 탐정이 죄다 해결할 것이라는 안심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다른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있다고 한다면, 주인공 화자가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경찰들과도 친분이 있고 많은 협조들도 하지만, 탐정이기 때문에 사회정의나 법률적인 부분보다는 의뢰인의 주문에 모든 촛점이 맞춰진다. 즉,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결말이 아니라, 상황상황에 따라서 주인공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결말지어진다. 어찌보면 이 결말이 최선이야? 라고 눈살을 찌푸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부분이 대실 해밋의 작품이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이 충분히 있겠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용납하며 읽게 되기도 하고, 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부분도 있다.
마지막 부분에 작가연보를 읽으면서, 대실 해밋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정사회를 그린 만큼, 작가 본인이 실제로 탐정이라는 직업을 경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또 전성기와는 또 다르게 비참한 삶 또한 살았다는 것을 알게됐다. 근데 이게 또, 이전 세대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고 작가연보를 보면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인 것 같다. 어쩌면, 유난히 파란만장한 시기를 살았던 작가 혹은 삶 자체가 평탄치 못한 작가들에게서 후대까지 남겨지는 유명한 작품들이 더 많이 탄생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힘들었던 세계문학단편선 읽기 중에서 처음으로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던 작품이기도 한 터라, 대실 해밋의 작품은 앞으로도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아마도 몰타의 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같은 달 <워싱턴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자기복제를 하는 것 같아서 글쓰기를 관뒀다.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한 순간 그것은 종말의 시작이다"라고 언급. _ '대실 해밋 연보' 중에서.
[이 단편선에 실린 작품 목록]
- 배신의 거미줄 _ Zigzags of Treachery (1923~1926)
- 불탄 얼굴 _ The Scorched Face (1925)
- 중국 여인들의 죽음 _ Dead Yellow Women (1925)
- 쿠피냘 섬의 약탈 _ The Gutting of Couffignal (1925)
- 크게 한탕 _ The Big Knock-Over (1927)
-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_ $106,000 Blood Money (1927)
- 메인의 죽음 _ The Main Death (1927)
- 국왕 놀음 _ This King Business (1928)
- 파리 잡는 끈끈이 _ TFlay Paper (1929)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Books >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0) | 2018.02.05 |
---|---|
스리체어스 『제인 오스틴』 (헬로월드 시리즈) (0) | 2018.01.18 |
주홍식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0) | 2018.01.15 |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0) | 201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