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 Mashimaro | 2017. 3. 9. 02:09







나는 문구 덕후라고도 할 수 있다. 남들이 백화점이나 옷가게 등에서 윈도우쇼핑을 할때 난 문구점을 방문하고, 또 꽤나 충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책은 그래서 집어들었다. (집어들었다기보단 클릭 한방으로 전자책을 구매했지만..^^;) 결론은, 매우 재미있다. 그러나 문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1장에 나오는 '클립과 핀' 부분은 조금 지루했거든.. 근데 점점 익숙한 소재들과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니 진도가 쑥쑥나갔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점들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더 심한 덕후냄새가 나는 저자의 생각과 서술이 가장 흥미로웠다. 공유할 수 있는 생각들이 많아서 더더욱 그랬을 것이며, 사실적인 기술이 아닌 본인의 감정을 매우 막 들어내주어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진 이유는.. 내가 고고학전공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문구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발명되고, 그것이 상용화되면서 정착된것들도 있고 사라지는 것들도 생기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인류의 시작과 그 도구를 발명해서 사용해가는 메인 사고체계는 바뀌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전공은 구석기시대인데, 그때는 어쩌면 본능과 생존을 위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 비해, 단지 문구라는 것은 그것의 심화버전으로, 인간생활에 있어서 보다 더 효율적이고 생산성있는 활동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그 종류가 더 세분화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본다. 또한 디지털시대로 바뀌어가며 문구가 존속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전망도 나오는데, 나는 저자의 생각과 비슷하다. 아무리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전하고, 디지털중심의 세상이 된다 할지라도 문구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나는 문구광이기도 하지만, 얼리어답터라는 소리도 가끔씩 듣는다. 사실 내가 얼리어답터라고 불릴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전자제품이나 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들에는 관심이 참 많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큰 돈을 주고 질렀을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들어서 왠만하면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 주위에 나와 비슷한 이유로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문구광이기도 한 사람들이 꽤 있다. 소위 문구광이라는 사람들은 디자인 등에 끌리기도 하지만, 기능적이 면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누구나 사용하는 볼펜 하나 종이 하나에도 품질을 따지고 내가 사용하기 가장 좋은 문구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즉, 내 생각엔 얼리어답터나 문구광이나 소재만 다를 뿐이지 조금더 활용적인, 조금더 생산적인 도구들을 원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문구의 대부분이 그러한 필요와 고민들로 인해 탄생되었다. 없어도 되기는 하지만, 있으면 편리해지는... 그러한 '더 나음'을 추구하는 과정 안에서 문구들이 발전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도구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있었던 고민이었을 것이고, 또한 이후에 계속 이어질 디지털의 세계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 일 것이다. 요즘에 큰 이슈 중 하나가 '디지털과 아날로그'일텐데, 어찌보면 이 두가지는 카테고리가 다를 뿐, 같은 맥락 안의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메일의 사용도가 점점 높아지는데도 만년필 판매량이 매년 줄어드는 대신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만년필 판매량이 안정적인 것(이따금 급격히 치솟는 상황은 물론)은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글을 적을 일은 항상 있을 것이고 그럴 일이 줄어들기는 해도 그 기회는 더욱 소중히 여겨지게 된다.



이메일과  아이팟의 세계에서는 값싼 만년필조차 지위 상징물(status symbol)이 될 수 있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얼마나 취향이 세련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상징물 말이다. 물론 당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자랑하고 싶다면 값비싼 만년필을 살 수도 있다.



작고 검은 몰스킨은 거의 종교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허세의 상징으로 조롱받기도 한다. 전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똑같이 생긴 유명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신이 독창적인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허세적 소도구라는 것이다. 작고 검은 몰스킨이나 희고 납작한 맥북 같은 것들.



사람들은 중국산이면 무조건 저급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중국은 종이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고 오랫동안 세계의 제지 산업을 이끌어온 곳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

......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구입한 공책에 대한 어느 영국 작가의 회상을 이탈리아 회사가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여 생산을 재개한 제품의 품질이 중국의 싸구려 제조업 때문에 저하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좀 거만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내가 쓰는 몰스킨 공책에는 지금은 도저히 판독 불가능한 메모와 생각들이 끼적여져 있다. 앞 장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보인다. 그때의 손글씨는 불안해하고 조심성이 지나치다. 새 공책 앞에서는 겁이 좀 날 수도 있다. 긴장이 풀리고 제대로 써나가기까지, 찍찍 줄을 긋고 실수를 해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내가 그 회사의 역사를 읽어나가면서 "경험 많은 그 회사의 화학자들이 한스-요아힘 호프만 박사의 지도 하에 금세 선명한 노란색의 형광 잉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문장에 노란색 스타빌로 형광펜의 쐐기형 펜촉으로 줄을 그으면서 얼마나 만족감(뱃속이 찌르르해지는 전율감)을 느꼈을지 다들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스-요아힘 호프만 박사와 그 팀에게 바치는 찬사로서 그들이 개발한 바로 그 빛나는 형광 노랑 잉크로 그들의 위대한 업적에 줄을 긋는 것만 한 것이 있을까?



롱나우 재단의 케빈 켈리는 "아주 장기적인 백업"에 관한 논문에서 종이자료와 전자식 자료의 수명을 비교했다. 알고보면 종이는 매우 믿을 만한 백업 수단이다. 불에 타거나 물에 젖어 글씨가 지워지는 일은 있지만 품질 좋은 중성지는 장기간 안정적이다. 창고 유지 비용도 싸고, 주위의 다른 기술이 변해도 상관없다. 지면에 적힌 내용은 그냥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특별한 장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지고 잘 보관된 종이는 1000년간 유지되며, 특별한 수고 없이도 2000년까지 유지될 것이다. 



전구가 발명되어 사람들은 양초로 집을 밝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용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양초는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돋보기가 검색을 나타내고 볼트와 노트가 설정을 의미하는 식의 시각적 은유는 이해하기 쉽다. 그것들은 우리의 실제 경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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