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양희은 『그럴 수 있어』

| Mashimaro | 2023. 8. 25. 20:58

 

 

 

이전에 밀리에서 발견하고 우연히 읽게 되었던 《그러라 그래》 이후로 다시 한 번 밀리에 나와있는 이 책 《그럴 수 있어》를 발견했다. 《그러라 그래》는 심지어 오디오북을 저자 본인이 참여하기도 했기에 더 좋겠다 싶어서 오디오북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오디오북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전작에서 나타나는 양희은스러움(?)은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찌보면 시리즈물이라기보다 두 책 모두 지금까지 저자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들을 한 권에 다 채울 수 없어서 계속해서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강했다. 

 

저자는 라디오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차곡차곡 발행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했다. 그 긴 세월을 이렇게 차곡차곡 글로 남겨두었으니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을 이렇게나마 책으로 접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라디오나  TV를 통해서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글.. 에시이..라는 것은 조금 더 진지하고 정제되고 또는 유머러스하게 그 작가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인간 양희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되고 친숙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재작년의 98세로 돌아가신 할머니와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았던 나로서는 이런 어른들, 혹은 나보다 먼저 사실 분들의 이야기나 지혜, 혹은 그분들 만의 유머코드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내가 자꾸 이런 책들을 자꾸 찾아읽게 되는지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여러 인터뷰영상들도 함께 찾아보곤 했는데... 역시나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매우 좋았다. 이렇게 진득하게 앉아서 어른들과 대화할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 그 삶의 이야기.. 그 옛날이야기들이 가끔 그리워지는 것 보면 나도 역시나 이제 나이가 꽤 들었나보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느낌이어서... 옛날이야기들이 듣고싶고, 또 나의 어린시절, 엄마의 어린시절... 등등이 그립다면, 그 시간에 읽어보는 이 책이 또 너무 좋지 않을까?

 

 

 

친구가 마흔둘, 남편이 마흔아홉. 한창 예쁘게 빛날 나이. 지금 생각하면 고작 마흔 초입이었으니 대입에 도전해도 했을 나이인데 도전은커녕 자신 없이 아내와 엄마로만 산 것 같다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일상에 발이 묶이고 거둘 식구들이 있는데 어느 누가 자기의 꿈을 밀고 나갈 수 있을까? 그래도 건강만 했더라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함께 추억했을 텐데... 아쉬워한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사람 말투가 이런 식이구나.

공감 능력이 빵점인 여자 때문에 남들 눈에는 내가 베짱이 같이 놀고 노래하며 힘 안 들이고 사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아니라고,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화내봐야 무엇하리.

'다 자기 생긴 대로지, 뭐. 더도 덜도 아니지. 그러라 그래.'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라 긴 시간 끊임없이 평가를 받으며 살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에 숱하게 넘어지고, 흔들리고, 엉망이 되고, 또다시 일어나서 자기를 돌아보고, 남도 돌아보고, 어떤 사람이 흔들리는 것도 보고, 누군가 바로 서는 것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다. 세월이 가르쳐준 거다. 내가 잡았던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스스로 놓아졌다

 

이런 동료들이 있으니 든든하다. 서로 무슨 말이든 털어놓는 사이, 그 사람들과 모여서 밥이든 걱정이든 무엇이든 나눈다.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살핀다. 그렇게 함께하면 스트레스가 없어진다. 많이 웃는다. 어쩌면 이런 것이 장수의 비결이겠다. 

넉넉하게 많이 웃으면 못 이겨낼 것도 없다. 

 

한 대 걸러 손자・손녀들보다 당신 자식에게 더 각별하셨다. 손주들이 아파 당신 딸이 피곤한 기색이라도 있으면 그게 더 속상하다고 하시는 어른이셨다. 

93세까지 사시다 주무시듯 가셨으니 호상이란다. 그러나 백수를 누리셨어도 남은 자식들에게는 삶의 뿌리가 죄 뽑히는 상실감의 무게가 호상이란 말의 무겓보다 더 무거울 터다. 문상을 온 여고 동창들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친정엄마의 안부를 물어왔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사니 큰 특권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엄마 옆에서 하루 일을 자분자분 얘기하며 재롱을 떨어본 적이 있었던가. 엄마가 앉아 계시거나 서 계신 모습만 보고, 바람 소리 나게 들어오고 나가는 게 내 일상이었다. 

 

사람의 귀는 언제나 묵은 소리를 좋아하고 사람의 눈은 그 반대로 새것에 번쩍 뜨인다고 한다. 언제나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귀의 속성 때문에 흘러간 노래들이 반가운 법이지만 내식대로, 내 세월의 것을 주장한다면 《뜻밖의 만남》은 의미가 없다. 후매들의 프로듀싱으로 내가 가진 어떤 '쪼'를 떨쳤다는 게 기쁘다. 

 

한 분은 손수 청국장을 띄워 밥 집을 하는 분이고, 다른 분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분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청국장 아주머니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으로 들로 나가 걷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모임에 껴서 다닌단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걷기 좋은 길, 아름다운 길, 낮은 산, 높이가 좀 되는 산 등등을 꿰고 있어 내게 '거기가 좋으니 가봐라', '다른 데는 몰라도 거기는 꼭 가봐라' 등의 얘기를 만날 때마다 하신다. 열심히 걷는 이유를 묻자 "길에선 욕심이 사라져!"라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했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가방의 무게와 부피, 그 정도면 길에서도 넉넉하리라.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