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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박정훈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Mashimaro | 2022. 3. 28. 23:14

 

 

 

 

 

이 책은 제목도 인상적이었지만, 결정적으로 김훈작가의 추천사를 표지에서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마냥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현재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배달의민족이나 각종 한국의 배달서비스를 이용해본 적은 없다. 물론 여기에서 우버이츠는 꽤 자주 이용한다. 그때마다 내가 입버릇처럼,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무료로 배달도 참 잘해주는데, 여기는 배달비도 비싸고 수수료도 비싸게 이렇게 이용을 해야한다며 불평을 자주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 부끄러워졌다. 그.나.마 우버이츠는 그래도 양반이었구나... 하고...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플랫폼노동 자체에 대한 것이어서, 우버이츠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한국형으로 정착된 배달서비스의 현주소를 접하고나니, 그래도 우버이츠는 지금 한국형 서비스에 비하면 양반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또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이 배달노동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4차 산업혁명으로도 대변되는 플랫폼산업에 대해서도 강한 문제제기를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 부분이 꽤 흥미로웠는데, 주로 희망적으로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또는 혁신적인 산업구조로만 설명하는 여타 다른 책들에 비해 관점이 새롭고 매우 흥미로웠다. 실직적인 적용예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분명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게 배달노동자로 직접 현업에서 뛰면서 활동하는 저자가 이야기해주고 있기에 더 생동감있고, 현장감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만큼 우려가되는 부분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왜 많은 서비스에 '한국형'이 붙으면 이렇게 노동자들이 희생하는 포인트가 많아지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그동안 우리사회가 서비스중심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요하는 과도한 서비스에 익숙해진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 안에서 개인의 이익과 착취의 구조를 꾸역꾸역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이긴 하다. 

 

어쨌든 이렇게 보호받기조차 힘든 노동의 현장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고있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읽어봤으면 좋겠고, 또 이러한 상황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공유하고 숙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김훈작가의 추천사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이 던져버린 책임을 누가 떠맡을까? 오롯이 개인이다. 라이더로 일하려면 오토바이를 사야 한다. 없다면? 임대료를 내고 빌리면 된다. 에어비앤비에 홍보하기 위해서 집주인은 1천만~2천만 원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집을 꾸민다. 배달, 청소와 숙박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도 개인에게 돌아간다. 생산수단을 일하는 사람이 가졌으니 책임도 일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근로자라면 일과 휴식의 구분이 쉽지만, 로그인이 필수인 플랫폼 노동에서는 노동과 쉼의 구분이 너무나 어렵다.

 

만약 인간 관리자라면 기존 라이더에게 차별적인 지시를 할 때 사람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다. 사람과 달리 앱은 일그러진 표정, 격앙된 어조, 적절하지 않은 단어와 욕설, 말실수 등을 하지 않는다. 애플리케이션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서 배민라이더스 라이더들은 소통에 대한 욕구가 매우 크다.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속도와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화된 속도와 숫자라는 점이다. 가령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에 나온 도착 예정 시간이 15분인 곳을 배민 라이더가 신호 위반과 과속, 자기만이 아는 지름길과 골목길을 통해서 7분 30초 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10명이 아니라 20명쯤 필요한 일을,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배민 라이더 10명이면 충분하다는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화・알고리즘화된 노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만든다. 손님이 앱을 통해 받은 깔끔하고 세련되며 과학적일 것 같은 배달 안내 시간 60분에는 라이더의 악착같은 시간, 아수라장의 시간이 숨어 있다.

 

급작스러운 근무 조건의 변화가 회사에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라이더는 일하면서 근무 조건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정보 부족과 예측 불가능성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을 떨어뜨린다. 이는 플랫폼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는다. 플랫폼 노동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험 때마다 비상식적인 금액의 프로모션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일까? 물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사업을 접으면 그만이다. 다만 플랫폼 기업이든 기존의 기업이든 사업을 철수할 때 노조 핑계를 대는 건 똑같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꺼내는 건 안 그래도 힘든 스타트업 기업을 옥죄는 행동이 아닐까? 하지만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플랫폼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하다면, 우리 사회가 해당 산업의 발전을 지지해야 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플랫폼 기업은 노동의 미래라는 커다란 주제를 앞장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이윤뿐만 아니라 가치도 가져가고 싶어 한다.

 

이 장의 목표는 플랫폼을 앱에서 삭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플랫폼이 추구하던 이상적 목표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비판적 제안을 하는 데 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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