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드디어 읽었다. 구입해두고 빨리 읽고싶어서 근질근질했는데, 그동안 읽고있는 책들이 꽤 있어서 손을 못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끌리거나 소재가 끌렸던 것은 전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이렇게 목빠지게 읽고싶었냐 한다면 그것은 이 책의 작가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를 통해 김혼비 작가의 무조건적인 팬이 되었다. 김혼비 작가 특유의 글투와 감각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그리고 그 안에 진지함도 녹아들어가 있어서 다음 작품을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작가들이 함께 쓴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까지 찾아읽게 되었던 듯.
어쨌든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은 남편인 박태하 작가와 함께 쓴 책이기도 하다. 부부작가인 것도 나름 좋을 것 같은데 함께 전국의 축제를 찾아다니며 탐방기를 함께 쓰다니. 이러한 삶도 참 멋지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쓴 이 책은 어느부분이 김혼비 작가의 파트인지 어느부분이 박태하 작가의 파트인지 알 길이 없다. 그만큼 두 작가가 찰떡같이 서로의 생각과 글투를 섞어놓았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시너지 효과가 있었는지 이 책의 재미 또한 몇 배 이상으로 넘쳐났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누군가 이 책을 도서관이나 조용한 공공장소에서 읽으려고 한다면 절대적으로 말리고 싶다. 정말 이 책을 읽는 동안 미친듯이 소리내어 웃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폭소'를 하면서 읽은 적도 거의 없는듯. 마치 개그프로를 보는 마냥 신나게 웃어대며 읽었다. 나도 꽤 책을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정도의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 정말 이분들의 센스를 너무 배우고 싶다. 심지어 매번 등장하는 그 라임들과 언어유희들은 어쩔것이며, 기발한 문장표현력은 어쩔것이야...ㅋㅋㅋ
마냥 웃기면서도 진지함 또한 너무 무겁지 않게 녹아있다. 특히 연어축제와 산천어축제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나조차도 정말 식겁했던 것 같다. 반려동물을 기르지도 않고 채식주의자도 아닌, 그런 의식이 별로 없는 나임에도 이 파트를 읽을때면 나도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웃음으로 승화시키고는 있었지만 진정으로 지역 축제와 지역경제, 지방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깊이 걱정하며 공감하고자 하는 두 작가의 마음들이 매우 잘 전달되었다. 이게 또 이 작가분들의 매력이지!
좋아하게 된 작가의 책을 벌써 네 권째 읽게 되었는데, 질리기는 커녕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작가 이름만 보고 이렇게 읽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또 책읽으면서 밑줄을 치다치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책읽기에만 몰두하게 된 책이 또 얼마나 있을까..? 부디 앞으로 오래오래,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작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어설프고, 때로는 키치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혼잡한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우리는 결코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그마저도 낡고 촌스러워진 ‘진정성’이라는 한 단어로 일축해 버리기에는 어떤 진심들이 우리 마음을 계속 건드린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도 남들 못지않게 거기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또 때로는 비웃는 ‘K스러움’도 결국은 그 마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불러 줘도 이딴 식인 것이다. 그동안 머릿속 그림을 실현할 만한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면 늘 ‘마음이 널뛰듯’ 해서 다 날리고 말았다. 돌아서면 후회하고, 다음엔 안 그러리라 다짐해 보지만 언제나 부질없다. 재밌는 양반들은 무슨. 이렇게 취재력 빵점인 사람 둘이서 전국 축제를 주제로 글을 쓰겠다니, 우리는 주제넘고 이 글은 주제를 넘어선 게 아닐까. 회의가 든다…….
그런데 뭐? ‘영산포홍어축제’라고? ‘홍어 is 축제’인 우리에게 ‘영산포축제축제!’ 같은 동어반복으로도 읽히는 이 축제를 결코 놓칠 수는 없었다.
정말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퍼포먼스’가 말 그대로 퍼포먼스였다니. 사람의 추정 심리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쓰는 애거서 크리스티적이면서, 앵글 조작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든 데이비드 코퍼필드적이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괄호로 다 묶어 버리고 보이는 것으로만 현실을 느껴야 완성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이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현상학적 제거의 영역인 ‘에포케’의 세계에 굳이 들어갔다가 같이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속이야 어떻든 그럴싸하게 보이면 그만이라는 이 요식의 극치인 K–퍼포먼스에 우리는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아까 선착장에서 농악대와 장정들은 대체 여기까지 왜 굳이 쫓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외지인을 보며 얼마나 의아하고 민망했을까를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먹기 시작한 홍어와 막걸리는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지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속인 사람도 딱히 공들여 속이려고 한 게 아닌데 부득부득 제 발로 찾아가는 공을 들여 속아 넘어간 우리가 어이없어서 자꾸 웃기고 눈물이 났다.
썰린 홍어의 모양을 비춰 줘야 관중도 함께 예쁜지 안 예쁜지 평가도 하고 감탄도 실망도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카메라는 그걸 뺀 모든 것을 비추었다. 원태연 시인 같은 보기 드문 감각을 가진 카메라맨이었다.(“손으로 홍어를 썰어 봐, 네가 썰 수 있는 한 예쁘게. 그걸 뺀 만큼 널 촬영해.”)
다행히 이 모든 엄숙과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버린 사람이 있었으니, 네…… 정말 가수 김연자 님 아니었으면 이 분위기 어쩔 뻔했을까요. 그가 등장하자 일순간 환해지는 모두의 얼굴. 니체는 자신의 철학 ‘아모르 파티’가 한국인들의 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알까.
홈페이지와 리플릿에 빼곡하게 적힌 설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텅 빈 것 같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추상적인’ 게 가능하다니…….
이어진 순서는 한술 더 떠 이 굿판에 작정하고 은유를 해체하려는 데리다적 음모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케 했다. 한바탕 춤과 노래를 한 무당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관객들을 둘러보며 “세상에 쉬운 건 없다고, 굿도 쉽지가 않아요. 가사 외워야지, 노래 외워야지. 그래도 조상님들에게 ‘우리 모두 행복하게 원하는 것 다 이루면서 잘 살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원은 우리가 열심히 굿해서 여러분 대신 빌어 드릴 테니까, 여러분은 그저 이 자리에서 편안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셔요!”라고 말한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대 뒤편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달려 나오더니 관객들에게 진짜로 떡을 한 덩이씩 나누어 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말 그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인간도 아낀다."라는 말은 믿지 않지만(히틀러만 봐도 그렇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라는 칸트의 말은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로 맨손 잡기 같은 체험을 요약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컹 내려앉는다.
르포 작가 한승태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니까. 먹거리로서의 살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으도 오락거리로서의 살생과 학대부터 없애 나가야 한다.('먹기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의 정당성에 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거기까지 다루지는 않겠다. 그것이 이 글의 한계일 것이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 온 일이 지적받으면 아무렇지 않았던 과거가 무안해지고 아무래져야 하는 미래에 포기해야 하는 특권들이 아쉬워서 반발심이 들기 마련이겠지만, 자연을 함부로 대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아니, 이제 겨우 치르기 시작한 2020년만 보더라도 더 암울해진 미래를 맞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무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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