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무튼 시리즈를 한 번 읽어볼까...하고 둘러보던 차, 이 책을 발견했다. 싸이월드라니..!!! 우리 세대라면 누구 하나 미니홈피 한번 안가져 본 적 없었을 것이고, 갑자기 접속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상실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싸이월드가 아무튼 시리즈에 등장했다니... 당장에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이 책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각종 에피소드들과 우리가 싸이월드를 통해 놀았던(?) 그 시간들이 자꾸 오버랩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자꾸 나도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심지어 그시절 우리가 싸이월드에 올인했던 시간들, 일촌명을 짓기 위해 머리싸매고 고민했던 시간들. 덜컥 일촌이 된 관계들을 또 어떻게 정리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들 등등.. 누구나 한번씩 고민해봤던 그러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나누어준다. 거기다 비교적 세련된(?) 지금의 SNS 환경과 비교해 보았을때 촌스럽고 부족하게 보일 법도 한 그 싸이월드를 놓치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꽤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이 얼마나 존재감이 있는 플랫폼이었나 싶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고 이렇게나 다양한 SNS, 커뮤니티 시스템들이 난무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시절을 경험한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싸이월드의 이미지는 참 아련하다. 이런 일관된 느낌을 갖게하는 플랫폼도 참 흔치 않으리라. 나조차도 책 제목을 보자마자 집어들게 될 정도였으니까.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추억여행을 다녀온 듯 하여 새삼 감사하다.
하지만 이런 열렬함은 일종의 착시였다. 싸이월드를 대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는 사실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잦은 서비스 중지와 복구, 폐업의 해프닝을 겪으면서도 그 추억을 백업하거나 그토록 소중한 싸이월드를 다시 이용하는 수고로움은 별로 감수하지 않았다. 단지 '싸이월드가 문 닫으면 모든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때마다 호소만 했다. 싸이월드 시대의 마감을 다들 그도록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전히 그곳을 방치했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부르짖으면서도 접속하지는 않았다. 서비스 중지와 복구가 반복되는 사이, 다들 절규와 안도의 감정적 롤러코스터만 신나게 탔다.
학위논문 자료도, 기획 취재 자료도 아니었다. 아무리 포장해봤자 '싸이질'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 마음 한편에서는 백업을 억제하는 기제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지워져도 어쩔 수 없어'처럼 체념을 가장한 억제였다. 망해선 안되지만 방치해두는 건 괜찮고, 잃어버리면 안되지만 백업은 하지 않는 이상한 베짱이었다.
강의실에서 우리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초라한 동양인이었지만, 싸이월드의 세계에서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영문학과 영화 수업을 듣는 촉망받는 유학생이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D와 나밖에 몰랐고, 그 두 세계의 격차가 커질수록 우리는 더욱 싸이월드라는 판타지에 집착했다.
그러고 보면 싸이월드는 참으로 서정적인 플랫폼이었다. 그의 이름을 지어줘야만 비로소 그가 나에게 와서 일촌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런 서정성에는 불편함이란 대가가 따랐다. 친구 신청이나 팔로잉을 하면 누구와도 즉시 관계 맺기가 가능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달리 싸이월드 세계에서 '인싸'가 되려면 창의력과 상상력, 문장력이 필요했다.
"요즘 SNS는 항상 최신 게시물이 실시간으로 뜨잖아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온통 현재만 끝없이 보여지는 건데 그게 참 피로할 때가 있어요."
"인스타그래머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힙이란 건 팔로잉은 0에, 팔로워는 무한대에 수렴하는 거 아닌가요? 일대일 일촌 관계가 기본이던 우리 시대와는 관계의 방정식이 다른 거죠."
우리는 마치 '싸이월드 시대를 회고한다'라는 특집 프로그램의 전문가 패널이라도 된 듯 의견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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